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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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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수 80 박형의 선택, 심상정의 선택
심 후보 사퇴에 대한 단상... "어려운 결정 존중합니다"
10.05.31 20:41 ㅣ최종 업데이트 10.05.31 20:41 안재성 (ajs4)

5월 30일 심상정 후보의 사퇴 발표가 있던 시각, 우리는 안산에서 유시민 후보의 유세를 듣고 있었습니다.

 

박천수 형. 당신은 언제나처럼 허름한 잠바에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왔지요. 탄광에서 15년, 안산공단으로 올라와 용접공으로 한 공장에서 20년 세월을 일해 온 당신, 정년퇴직 후에도 같은 공장에서 계약직으로 몇 해째 일해 온 사이 당신의 머리는 백발이 되어 있었습니다.

 

"낼 모래 환갑인데 아직도 오토바이 타세요? 만년청춘이시네요."

 

오랜만에 만나는 내 말에 당신은 잔주름 늘어난 마른 얼굴로 허허 웃었지요. 20여 년 전 탄광에서 광부로 처음 만났을 때 그 탱탱하던 젊음은 사라지고 햇볕도 쬐지 못해 창백한 늙은 얼굴이 마음 아팠습니다.

 

탄광에서 여러 해 동안 열심히 노동운동을 했고, 지금도 마음은 변치 않은 당신, 유세장에 들어서서 내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갑자기 내 주머니에 5만원을 넣어주었습니다. 집에 들어갈 때 아이들에게 과자라도 사주라고 말입니다. 여러 사람 있는 데서 승강이를 할 수도 없고, 완강히 거부하면 오히려 서운해 할까봐 그냥 넣어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상정씨 잘한 거예요, 우리 진보는 분열로 망하잖아요"

 

  
▲ 심상정 "유시민 후보와 단일화" 끝내 눈물 심상정 진보신당 경기도지사 후보가 30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유시민 국민참여당 후보와의 단일화를 발표한 뒤 눈물을 훔치며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 남소연
심상정


열렬히 환호하는 지지자들을 향해, 유시민 후보는 먼저 심상정 후보가 야권후보 단일화를 위해 용퇴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에 지지자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하자 제지하며 말했습니다. 사퇴를 기뻐하기 전에 심 후보와 진보신당 당원들의 고통을 헤아려 감사의 박수를 보내자고요. 미안하고 감사하며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당신은 박수를 치며 말했습니다.

 

"심상정씨 잘한 거예요. 우리 진보는 분열로 망하잖아요. 서로 생각이 다른 거야 어쩔 수 없더라도, 적어도 선거 때는 하나로 합쳐야 해요. 안 그러면 김문수 같은 추잡한 변신괴물이 다시 당선되잖아요. 참 용기 있는 사람이에요, 심상정. 앞으로는 심상정도 지지할 거예요."

 

사실 나는 좌파가 분열로 망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보수 우파들은 이미 취득한 금권을 유지하기 위해 현재 사회구조를 그대로 온존시키면 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갈라질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제각기 서로 다른 상상과 계획을 가지는 게 당연합니다.

 

나는 그것을 억지로 묶어 놓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남미나 유럽처럼 제각기 다른 진보정당이 몇 개씩 존재하고 정파들은 십여 개가 넘는 현상이 오히려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선거 때, 혹은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는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고 힘을 합쳐야 공동투쟁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당신의 생각에 동의하지만, 유시민 후보의 연설을 듣느라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유시민 후보의 연설은 들을 만했습니다. 탁월한 연설가인 그는 결코 북한정권을 지지한 적이 없는 민주세력을 친북좌파로 비난하는 김문수 후보의 몰염치에 대해서, 이명박 정부의 반민주적 행태에 대해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게 비판을 퍼부었고, 당신은 그때마다 환호로 응했습니다.

 

특히 당신은 유시민 후보가 김문수는 부자와 권력 있는 사람들을 위한 공약을, 자신은 평범한 서민과 노동자들을 위한 공약을 펼치고 있다고 말할 때 가장 열심히 응원을 했습니다.

 

사실 이 주장은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심상정씨의 진보신당이야말로 현재의 범야권 4당이 노동자, 서민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주장하며 만든 정당이기 때문입니다. 참여정부 때부터 시작된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걱정하던 나 역시 진보신당이 창당되자마자, 난생 처음으로 스스로 정당의 당원으로 가입했고 홍보대사로 활동했으니까요.

 

"우리가 부자 되면 누가 힘든 일 하겠어?"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서도 당신은 단순하고도 명쾌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 후보의 연설이 끝나고 천정배 의원의 지지연설이 시작되어 다소 여유가 생겼을 때, 당신은 말했습니다.

 

"참여정부가 완벽하지 못했던 거 사실이고 잘못도 많았어요. 그거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요? 그렇지만 민주당이 잘못했다면 진보정당들은 그보다 더 좋은 공약, 더 대중적인 공약을 내세워 지지를 얻었어야죠. 지지도를 높일 좋은 기회였는데 전혀 그러지를 못하고 민주당 탓만 하면 뭐하겠어요?"

 

진보정당에 대한 당신의 비판은 매우 엄했습니다.

 

"한나라당 지지하는 사람들은 전부 수구꼴통이라고 욕하고, 민주당 지지하면 똑같은 놈들에게 속는 거라고 뭐라 하니, 그럼 국민의 95프로가 나쁜 놈이거나 아니면 바보란 말인가요?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나만 옳다고 주장하려면 정당운동을 왜 해요? 옛날처럼 그냥 운동단체로 남지."

 

그래도 당신은 진보정당에 대한 애정과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심상정 후보가 피눈물 흘리며 물러났지만, 다음번 선거에서는 진보정당이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가지고 거꾸로 민주당이나 참여당에게 후보를 단일화하라고 압박을 넣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렇게 하려면 진짜 대중들이 원하는 게 뭔지 고민하고 진짜 그럴듯한 미래상을 보여줘야지요."

 

냉철하게 반짝거리는 정치적 식견을 보여주던 당신은 그러나 유세장의 소란이 잦아들면서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헤어지려고 내 차 있는 곳까지 걸어갈 때, 당신은 힘없이 말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오.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들은 우리 노동자들이 가난하기를 원하는 것 같애. 안 그래요? 우리가 부자가 되면 누가 더러운 일, 힘든 일을 하겠어?"

 

당신은 내가 아는 것만도 35년 동안, 이리저리 이직을 한 것도 아니고 오로지 한 군데 탄광과 한 군데 공장에서 최고 기술자로 일했지요. 얼마나 열심히 일하면 정년이 지났는데도 몇 년씩 붙잡고 일을 시키겠습니까? 그런데 당신의 재산이라고는 팔고 싶어도 팔기도 어려운 안산 외곽의 낡아빠진 싸구려 연립주택 한 채 뿐입니다.

 

"내가 지금 얼마 받는 줄 알아요? 이것 저것 떼고 나면 내 손에 80만원 들어와요. 퇴직하기 전에도 겨우 110만원 받았어요. 집사람이 마트에서 밤 열 시까지 일하고 70만 원 받아오는 게 우리 수입의 전부요. 한 달 150만원으로 애들 가르치고 먹고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지요? 노동자는 영원히 이렇게 살아야 하나봐."

 

와락 부끄러워졌습니다. 한 달 150만 원으로 대학생까지 가르쳐온 당신이, 그래도 당신보다는 잘 산다고 할 수 있는 지식인인 내게 5만원을 주다니. 옛날, 공장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분신으로 죽은 벗 박영진이 명절날 받은 2만원 상여금에서 5천원을 떼어 반강제로 내게 주며 아이들 과자 사주라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수많은 노동자들을 위한 선택

 

집에 오는 길에, 아카시아 향기 가득한 용인휴게소에서, 심상정씨에게 개인 문자를 보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결정 존중한다고, 이번 일을 통해 더 많은 진정한 지지자를 얻게 될 것이라고, 힘내라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강력한 당내반발에도 사퇴를 강행한 심상정 후보의 고뇌에 찬 결단에도 불구하고, 선거의 전망이 여전히 불투명한 2010년 5월 30일 밤, 투표를 사흘 앞둔 이 밤중에, 한사코 자리를 뜨지 않고, 내가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아스팔트 위에 서서 손을 흔들던 당신을 생각합니다. 당신과 박영진, 그리고 근본이 선량한 저 수많은 노동자들을 생각합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입니다. 무작위 대중을 상대로 하는 선거제도 자체의 맹점도 있지만,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 놓은 최선의 제도 중 하나입니다. 유시민이든 심상정이든 그 누구든 서민대중을 생각하고 노동자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 명이라도 더 정치에 진출하여 올바른 정책을 펼치도록, 투표도 하고 질책도 하고 격려도 하는 축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안재성님은 <파업> <황금이삭> <경성트로이카> 등을 쓴 소설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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