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경제학으로 유명한 경제학자 리처드 탈러와 법률정책자 선스타인 교수의 저서 ‘넛지(nudge)’는 지난해 경제경영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변기에 벌레 모양 스티커를 붙여놓거나 축구 골대 형태 장치를 하면 남성들의 화장실 실수(?)가 80% 가까이 줄어든다는 사례처럼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주위 환경의 작은 변화만으로도 심리적 영향을 받아 실제적인 행동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존재라는 측면을 강조한 서적이다.
최근 경제학자, 경영학자, 심리학자 모두 행동경제학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아주 높아지고 있다. 그만큼 인간의 의사결정이 이성적인 측면보다 감성적인 측면에 더욱 영향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경영학자 필립 코틀러(Philip Kotler)는 “사회구조가 복잡해지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질수록 소비자는 재미를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실제적으로 애플 아이폰 열풍은 진정한 스마트폰의 의미인 ‘Smart(똑똑한)’ 경쟁력보다는 ‘Fun(재미있는)’ 경쟁력이 우월한 덕분에 그동안 시장을 선점해온 모든 스마트폰을 단숨에 뛰어넘을 수 있었다.
최근 삼성전자가 “세계 최대 멀티미디어 가전 전시회 CES 2011에서 펀(Fun)하게 소통하겠다”고 한 것은 이런 애플의 괄목할 만한 성공요인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
재미는 단순히 소비자들에게 흥미 유발의 이유일 뿐 아니라 보다 쉬운 접근과 애착, 나아가 소비자 한 명 한 명이 주위 지인들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결과적으로 자발적인 홍보 요원을 지원함으로써 브랜드 충성도 제고에 크게 기여한다.
소비 형태가 점점 더 소비자에게 주도권이 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의 똑똑한 소비자들은 이제 즐거운(Fun) 쇼핑(Shopping), 즉 펀핑(Funpping)을 원하는 ‘놀이하는 소비자, 플레이슈머(Playsumer)’로 진화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캐주얼브랜드 아베크롬비&피치의 성공 요인은 오감을 만족시키는 매장 환경이다. 차별화된 브랜드 감성을 소비자들에게 인지시키기 위해 매장에 자체적으로 개발한 향기를 뿜어 후각을 자극했다. 또 신나는 음악으로 청각을 자극하고 시각을 만족시킬 수 있는 판매사원들을 채용하는 방식으로 소비자 감성을 자극했다.
최근 오픈한 아베크롬비의 영국 런던 플래그십 스토어는 간판도 없다. ‘어떤 매장’인가 궁금해하며 들어선 고객들은 깜짝 놀랄 만한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마치 클럽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다. 곳곳에서 근사한 댄서들과 식스팩을 자랑하는 건장하고 잘생긴 판매사원이 고객들을 반긴다. 얼굴마담 같은 이 판매사원들은 고객 쇼핑을 돕기보다 그들과 인증샷(스크린샷) 찍기에 바쁘다. 고객들은 구매만 하기 위해 매장에 가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놀아주는 매장이기 때문에 방문하는 것이다.
즐거운 경험을 한 고객들은 기꺼이 주머니를 열어 내가 즐긴 값을 지불한다. 어쩌면 즐거운 경험이 ‘주’이고 옷(물건)은 ‘덤’일지도 모른다.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선택설계자’로서 마케터들은 이제 소비자에게 무엇을 어떻게 팔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는 어떻게 그들을 즐겁게 놀게 해서 다시 방문하게 할 것인가를 진심으로 고민해야 한다. 창조적 소비자(크리슈머·Cresumer)로 진화하고 있는 플레이슈머를 잡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김해련 에이다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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