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중국 경제 8대 이슈
2010년이 중국의 부상을 알리는 시기였다면, 2011년은 글로벌 무대에서 중국 경계 사이렌이 요란해지는 해가 될 것이다. 중국 내부적으로는 대국경제로 성장해오는 과정에서 배태된 각종 모순이 속살을 드러내는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중국 공산당이 누적된 폐해를 구조전환이란 수술대 위에 올리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성장엔진의 교체, 시장친화적 개혁, 민생개선 등은 내년 시작되는 12?5 규획의 가장 중요한 목표이다. 크게 보면 고도성장의 과실을 나누는 작업인 만큼 조그마한 걸림돌에도 대대적인 저항을 부를 수 있는, 녹녹하지 않은 ‘대수술’이다. 구조전환 작업이 탄력을 받아 성공 가능성을 높인다면, ‘중국식 발전모델’의 효용성은 세계적 차원에서 광범위한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다.
반면 지지부진하게 진행된다면, 중국은 물론 한국경제가 안게 될 차이나 리스크도 더욱 커질 것이다. 최근 불거진 인플레이션 압력이 구조전환 작업에 먹구름을 드리울 것이란 우려가 벌써 나온다. 2011년은 중국에게도, 바다 건너 한국경제에게도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LG 비즈니스 인사이트'는 내년 중국경제가 연중 화두로 끌고 나갈 주요 이슈를 8대 트렌드로 정리했다. 여기에는 중국의 고민과 해결을 위한 방안들이 녹아있다. 중국의 고민을 해결하는 데 기여하는 형태의 비즈니스가 결과적으로 중국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 목 차 >
1. 또렷해질 중국의 ‘굴기(崛起)’
2. 중국 특색의 성장모델(中國模式)
3. 12?5 규획으로 탄력 받을 ‘전략성 신흥산업’
4. 포용성(包容性) 성장이 상징하는 분배개혁
5. 반 인플레이션 전쟁(防通漲)
6. 징후(京滬)고속철 개통, 고속철 시대의 본격화
7. 도시화의 어두운 자화상, 도시병(城市病)과 강제철거(拆遷)
8. 인수합병 시장의 강자, 중국기업들
1. 또렷해질 중국의 ‘굴기(崛起)’
“도광양회(韜光養晦)가 철칙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도광양회할 수도, 유소작위(有所作爲)할 수도 있다. 다만 후자의 필요성이 경향적으로 커지고 있을 뿐이다.”
한국에도 제법 알려진 중국 인민대 미국연구소의 스인홍(時殷弘) 교수가 최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중국 외교의 현주소다. 중국의 국력이 일취월장하면서 기존 강국과의 마찰이 늘어나자 중국 내부에서는 외교적 고립을 우려하는 목소리와 ‘적극 국익을 챙겨야 할 때가 왔다’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스 교수의 평가는 상황에 맞춰 실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절충론을 표방하고 있지만, 추세적으로 유소작위의 상황이 많아지고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중국 국영 중앙TV는 2007년 특집 기획프로그램으로 ‘대국굴기(大國崛起)’를 방영했다.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미국 러시아 등 중상주의와 제국주의,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강대국으로 부상했던 9개국의 강약점을 분석한 대작이었다. 방영 취지는 선진국 벤치마킹이었지만, 3년이 지나 판단해보면 CCTV는 자국의 대국굴기를 예견하는 홍보물을 내보낸 셈이 됐다. 게다가 중국의 굴기는 글로벌 경제위기의 파고 속에서 세계 최강 미국이 디플레이션 위기에 몰려 달러를 무차별 찍어내고, ‘굴기강국’들이 즐비한 유로 존이 해체위기를 겪고 있으며,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한탄하는 가운데 벌어지고 있는 세기사적 사건이다.
중국 개혁개방의 초석을 다진 덩샤오핑(鄧小平)은 경제건설에 매진하기 위해 가능하면 주변 강대국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전술적으로도 협조하는 외교전략으로서 도광양회를 주창했다. 현실적으로 동서 냉전기와 이어진 미국 패권시대에 순응하며 목소리를 낮추는 것이 중국의 국익을 극대화시키는 차선의 방편이었다. 이 노선은 중국경제가 외국으로부터 부족한 자금과 기술을 들여오고 세계무역기구 가입 등을 통해 해외시장을 넓혀왔던 지난 20여 년간 훌륭하게 기능했다.
‘굴기(Rising)’란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2003년 10월 중국이 주관하는 보아오(博鰲) 아시아포럼에서 공산당 중앙당교 간부를 역임했던 정비젠(鄭必堅)이 ‘화평굴기론’을 제창하면서부터이다. 현 중국 4세대 지도부가 권력의 전면에 나선지 1년만의 일이었다. 연평균 9.8%의 고도성장을 통해 일본에 필적할 만한 규모를 갖췄기에 굴기 노선은 단번에 국제사회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당시엔 중국 지도자들이 ‘굴기’를 남발할 수 없는 시대적 한계가 분명했다. 굴기란 용어는 기존 세력균형의 변화, 즉 중국의 굴기에 반해 세력이 약화되는 상대국이 암시돼 있다. 필요 이상으로 미국 일본 등 강대국과 인도 등 인접국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화평굴기’는 정비젠의 공식 발언 이후 채 1년이 지나기 전 ‘화평발전’이란 용어로 대체돼 공식 석상에서 사용된다. 화평발전은 다분히 상생(相生)발전의 늬앙스를 풍기는데, 이 같은 절제는 역설적으로 중국이 대외적으로 자국의 국제지위 부상을 선언하기를 유보했다는 의미가 된다.
공식적으로 ‘굴기’를 선언하는 데 따른 정치적 이득은 적지 않을 것이다. 각종 모순으로 사회적 응집력이 이완되고 있는 중국에서 민족주의적 자긍심도 높일 수 있고, 공산당의 통치력 역시 한층 배가될 수 있다. 그러나 국제관계에선 상당한 금액의 ‘계산서’가 날라올 게 뻔하다. 대표적인 것이 ‘대국책임론’이다.
미국 보수진영의 학자들이 내세운 ‘G2’란 용어는 중국을 미국에 버금가는 강대국으로 띄우는 대신, 글로벌 불균형의 해소에 나서야 한다는 책임론을 동시에 제기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번져가던 때 맹렬하게 달아오른 G2 책임론은 지난달 서울의 G20 정상회담을 앞두고는 위안화 절상이나 과도한 경상수지 감축 등으로 구체화됐다. 2009년 말 코펜하겐 회의에서 제기된 중국의 CO2 감축의무, 핵확산방지 문제에서의 기여 등 G2의 책임은 경제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 정부관계자는 물론 학계의 전문가들조차 한사코 G2란 외투를 입기를 거부하는 것은 이처럼 미국 등 선진국의 속내를 읽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의 세계질서는 그러나 중국이 손사래를 치든, 받아들이든 ‘중국 굴기’가 대세로 굳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정황들이 가득하다. 미국 등 선진국들의 경기부진은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반면 중국경제는 여전히 9% 안팎의 거침없는 성장세를 바탕으로 글로벌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을 자임할 것이다. 2010년 2분기 일본 경제규모를 넘어선(경상달러 기준) 중국은 내년엔 한층 일본과의 격차를 늘려갈 것이다. 대규모 재정투입과 금리인하란 카드를 남발한 선진국 내에선 재정이란 약발이 떨어지자 사회혼란까지 가중되는 양상이다. 유럽 재정위기의 진원지인 남유럽 각국은 물론, 좀체 시위에 나서지 않는 영국 시민들도 대학 등록금 인상방침에 반기를 들었다.
미 연준의 달러 찍기는 동아시아 각국 통화의 절상을 부추기게 마련인데, 중국 역시 인플레 압력을 막기 위해 점진적 위안화 절상은 불가피한 선택이 되고 있다. 한층 세진 위안화를 배경으로 중국 국유기업들의 해외기업 사냥은 더욱 맹렬히 진행될 것이 분명하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파워게임에서도 중국은 한치의 물러섬이 없이 미국 등과 기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란제재 문제나 미얀마 군부독재 제재에서도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내온 중국이다. 미국으로선 옛 소련 이후 처음으로 진지하게 다뤄야 할 강적을 만난 셈이다. 중국의 독자행보가 두드러질수록 미국엔 안보, 중국엔 경제협력으로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한국의 전략적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
2. 중국 특색의 성장모델(中國模式)
‘중국 굴기’가 글로벌 경제나 외교무대에서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굳어져감에 따라 내년엔 중국의 비상을 이끌어온 ‘성장모델’에 대한 논의가 더욱 무성해질 것이다. 지난 30년과 향후 수십 년 중국의 굴기를 이끌 것으로 기대되는 ‘중국식 발전모델’의 정체와 역할, 미래에 대한 관심이 서방세계에선 크게 늘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지난 여름 ‘중국모델이 서방모델보다 더 우월한가’란 명제를 놓고 세계 석학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찬반토론을 벌였다. ‘반대’ 의견이 예상대로 다수를 차지했지만, 찬성 의견이 42%나 나와 충격을 줬다.
중국모델이 최초로 국제사회의 관심을 끈 것은 2004년 골드만 삭스 고문이자 칭화대 겸임교수였던 조슈와 라모(Joshua C. Ramo)가 영국 정부 산하 연구소에서 ‘베이징 컨센서스(北京共識)’란 보고서를 발표하면서부터이다. 라모의 보고서는 1990년대 이후 서방세계에 정착된 ‘워싱턴 컨센서스’와의 대조성 때문에 금세 주목을 받았으나, 정작 베이징 컨센서스의 뼈대를 이루는 개념들은 2002년 겨울 출범한 공산당 4세대 지도자 그룹의 국가운영 전략과 큰 차이가 없었다는 평가가 많다.
최근 중국 내부적으로 제기되는 ‘중국모델’ 은 소유형태를 기준으로 보면, 소비에트식 국유모델도, 서방식 사유화모델도 아닌 혼합경제 모델이다. 성장방식에 있어서도 자본동원이나 시장개방도에 있어서 동아시아 발전국가와 다른 길을 밟아온 ‘중국 특색’의 모델이라고 한다. 중국모델을 비판하는 가장 중요한 논거인 ‘민주주의 부재론’에 대해서도 중국 학자들은, 장기적이고 전면적인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해 발전단계에 맞춰 점진적으로 민주주의가 신장되는 방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 정부나 학계로선 중국모델의 전파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과시할 수 있는 놓치기 싫은 기회이다. 중국 지식인 사회에선 ‘중국형 발전모델’이란 일반명사형 표현보다 ‘중국모델(中國模式)’이란 고유명사로 통칭하곤 한다. 중국 고유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특수성 때문에 중국은 중국모델의 글로벌 확장에 공식적으로는 신중하다. 중국모델을 교범으로 간주하려는 개도국들에게도 ‘자국 실정에 맞는 독자모델’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 같은 접근법은 서방세계가 ‘신 자유주의’로 특징 지을 수 있는 워싱턴 컨센서스를 널리 이식시켜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전략과 크게 다르다. 서구 강대국들의 내정개입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개입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노벨상 선정위원회가 올해 평화상 수상자로 중국 반체제인사인 류샤오보(劉曉波)를 선정하자, 중국 외교부가 ‘중국 현행법을 어긴 범죄자’라고 강력히 비난한 것은 이 같은 배경 때문이다. 중국 주류 지식인 사회는 류샤오보의 수상을 서구세계의 중국모델에 대한 견제의 일환으로 간주하고 있다.
중국모델의 장점은 일반적으로 ▲성장에 필요한 자원을 집중시킨 데 따른 효율성 ▲정치 조직화에 따른 낭비의 제거 ▲제도혁신의 용이성 ▲문화적 포용성 등이 거론된다. 반면 이 같은 효율에 가려진 단점으로는 ▲권력의 부패 ▲자본의 전횡 ▲시스템이 아닌 인적 권위의 부활 ▲자율의 실종 등이 지목된다. 중국모델의 비판적 지지자들은 중국모델의 기본적 특징으로 ‘강한 국가, 약한 사회’를 들고 있다. 따라서 향후 부패, 국부민궁(國富民窮), 국유병(國有病), 양극화, 혁신능력 약화 등의 걸림돌을 해소하지 못할 경우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중국모델이나 중국 굴기론 등은 부쩍 강력해진 중국의 소프트파워를 상징하는 키워드들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부터 시작된 중국의 대규모 국제행사 개최 열풍은 엑스포, 아시안게임을 거쳐 내년 하계 유니버시아드(深圳)로 이어질 예정이다. 대규모 행사 개막 및 폐막식에 펼쳐진 화려한 영상과 군무(群舞)는 하나같이 중국 국가 이미지를 고양하는 데 기여하도록 구성돼 있다. 중국 문화에 대한 홍보는 대회기간 내내 빠지지 않는다. 거대해진 경제규모와 함께 중국 소프트 파워의 글로벌 영향력도 갈수록 확장될 것이다.
3. 12?5 규획으로 탄력 받을 ‘전략성 신흥산업’
2011년엔 ‘국민경제 및 사회발전에 관한 제12차5개년 규획(이하 12?5로 약칭)’이 시작된다. 지난 11차5개년 규획은 개시연도 전해인 2005년 가을에 이미 상세한 계획요강이 책자로까지 편집돼 서점에 깔렸으나 이번 12?5는 연말이 되도록 아직 상세계획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 규획의 골자는 올해 10월 열린 공산당 17기 5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5中全會)에서 정부에 ‘건의’하는 형식으로 언론에 공개됐는데, 국무원의 상세계획까지 덧붙여 내년 3월 전인대의 비준을 통과하게 된다. 중국 공산당이 전인대란 헌법상 최고기관의 권위를 ‘법치’란 차원에서 인정하고 힘을 실어주려는 제스처이다.
12?5가 내년 중국 경제사회의 최고 이슈로 부상할 것이 분명한 것은 중국 공산당이 향후 5년을 ‘소강(小康)사회 전면건설의 관건시기’로 판단하고, 개혁개방을 강화해 경제발전방식을 전환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이 계획에 담았다고 공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강사회 전면건설의 관건’이란 표현은 이미 11?5 때도 등장해 외국 분석가들에게도 익숙하다. 즉 12?5 정책목표의 상당부분은 11?5에도 언급됐으나, 미완에 그쳤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다.
주지하다시피 중국 경제성장의 견인차는 고정자산투자와 수출이었다. 30년 연평균 9.8%성장이란 화려한 성적표를 자랑한다. 그러나 각종 격차가 확대되면서 ‘무엇을 위한 성장인가’란 문제의식과 성장 만능주의에 대한 피로감이 팽배해졌다. 기업 등 공유부문이 성장의 과실을 편향적으로 가져가는 동안 사회 기층 인민들의 행복지수는 크게 떨어진 탓이다. 사실 11?5 기간 이 같은 성장방식의 구조적 문제점들이 종합적으로 파악돼 본격 대응에 나섰지만,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구조조정 과제가 시급한 경기대책에 밀려나면서 이번 12?5에까지 연결된 것이다.
구조적 문제점들을 해결하지 않는 한 ‘지속 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은 이미 4세대 지도부가 등장한 2002년 말 내려졌다. 그런 데도 8년이 지나도록 큰 성과를 체감하기 힘든 만큼 공산당 지도부는 12?5 기간 대대적인 구조전환 의지를 거듭 천명하고 있다.
그렇다고 12?5가 11?5의 복제판이란 의미는 아니다. 무엇보다 당 중앙의 ‘건의’ 10개항에서 전례 없이 내수확대가 명시적으로, 그것도 첫째로 언급됐다(<표1> 참조). 내수확대 정책은 2008년 하반기부터 채택된 긴급 경기대책의 일환이었으나, 사실 11?5의 기조에 깔려 있는 경제성장 모델의 전환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니고 있다. 주요 수출시장의 침체와 중국 내부 원가상승 추세에 맞춰 내수확대의 필요성을 더욱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내수확대에 이어 농업현대화 추진이 두 번째 정책목표로 제시됐다.
두 번째 특징은 문화산업을 국민경제 지주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이 처음으로 발전목표에 포함됐다는 점이다. 2009년 문화산업 부가가치는 8,400억 위안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국내총생산의 2.5%에 불과하다. 향후 중국경제가 연평균 8%씩 성장한다고 가정할 때, 지주산업의 위상(GDP의 5%)에 이르려면 2015년경 문화부문 부가가치가 대략 2조6,608억 위안에 달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연평균 21%의 성장세이다. 계획대로라면, 중국 문화 소프트파워의 증대는 크게 두드러질 것이다.
외국기업들이 기회와 함께 위협을 느끼는 발전목표는 3번째 우선순위에 놓인 산업경쟁력 제고이다. 구체적으로 ▲에너지절약 및 환경보호 ▲차세대 정보기술 ▲생물 ▲첨단 장비제조 ▲신에너지 ▲신재료 ▲신에너지자동차 등 7대 전략성 신흥산업이 제시됐다. ‘전략’이란 표현에서 나타나듯 열거된 신흥산업들은 향후 5년 발전의 토대를 다지고(GDP의 8%) 이후 글로벌 경쟁력을 확고히 다져나갈(GDP의 15%) 계획이다. 에너지 분야에 초점을 맞춘 것에서 중국경제의 에너지난을 간접적으로 읽을 수 있다. 이들 산업은 공교롭게도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 제조강국들 모두 차세대 미래산업으로 키우겠다고 공언하는 만큼 12?5의 산업정책은 ‘선진국 캐치 업’을 넘어서 ‘선진국 추월’ 정책인 셈이 됐다.
4. 포용성(包容性) 성장이 상징하는 분배개혁
12?5가 강조하는 경제발전 방식의 전환은 사실 성장과실의 분배양식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투자 수출부문이 주도하는 성장방식은 투자수익률을 높여주는 다양한 정책적 뒷받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위안화 가치의 인위적인 저평가, 각종 원자재시장의 가격억제, 생산직 근로자들의 임금상승을 억제하는 호구제와 같은 사회적 속박 등이 대표적인 투자 수출지원책들이다.
이 같은 방식의 성장이 30년을 끌어오면서, 자연자원(특히 토지)과 자본에 대한 경제적 보상이 과도해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토지사용권을 사들여 천문학적인 개발이익을 챙기는 부동산업체와 국유기업, 지방정부가 있는가 하면, 단순 생산직 근로자들은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현재 중국경제의 소득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거의 0.5에 육박한 것으로 추산되는데, 중국 공권력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도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소요 사건이 해마다 수만 건씩 보고되고 있다. 불균형 성장의 결과로 연해-내륙, 도시-농촌, 빈부격차 등 3대 격차가 심각해지고 있는데(<그림 1> 참조), 후진타오(胡錦濤) 지도부가 들어선 이후 농산물이나 근로임금 인상정책을 취하고 있는 배경엔 이 같은 문제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포용성 성장이란 용어 자체는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지난해 아태경제협력회의(APEC) 석상에서 처음 제기했다. 후 주석의 언급 이후 중국 내부 전문가들은 ‘성장의 과실을 공평하게 합리적으로 분배하는’ 형태의 성장으로 정의하고 있으나, 무엇을 분배하느냐 등 구체적 내용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포용성 성장은 향후 12?5에서 분배개혁, 구체적으로 ‘민생보장 및 개선’으로 나타날 것이다. 11?5에서 빈번하게 나타났던 농민소득 및 근로임금 인상노선이 지속되고, 도시 저소득층을 위한 소득세 감면조치나 4대 보험의 정부지원 및 확충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무엇보다 경제발전 방식의 전환이 점진적이나마 이뤄진다면 소득분배는 개선되는 쪽으로 진행될 수 있다.
포용성 성장으로의 전환은 중국이 ‘파이를 키우는’ 단계에서 벗어나 ‘파이도 키우고 나누는 것도 고민하는’ 단계로 이행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12?5가 과거 5개년 계획의 발전목표와 달리 수치목표를 제시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경제가 아직도 인구보너스기에 있는 만큼 쏟아져 나오는 노동인력을 흡수하기 위해선 상당히 높은 성장률이 필수적이다. 지금보다 저성장이 추세적으로 자리잡을 때도 ‘파이를 나누는’ 문제가 중요하게 다뤄질 지는 불투명하다.
5. 반 인플레이션 전쟁(防通漲)
중국의 지난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4.4%로 나타났다. 중국 정부가 정해놓은 물가억제선 3%를 훌쩍 넘었다. 2008년 초의 8.7%보다는 그래도 낮지만,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그림 2> 참조). 2008년 물가폭등은 춘졔(春節) 식료품 수요와 동남부의 설해가 겹치면서 국지적 소요사태로까지 이어졌다.
최근 물가급등세는 식료품가격이 주도하고 있다. 10월 식품가격 상승률 10%는 2008년 초 춘졔 이후 가장 높다. 식품물가 불안은 서민들의 체감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물가상승세가 일반화되면 중국 공산당이 내년에도 역점사업으로 내놓은 ‘서민생활 안정’은 토대부터 흔들리게 마련이다.
지난 11월22일 국무원이 내놓은 ‘기본생활보장을 위한 물가안정’ 16개항 조치를 보면 무려 6개항이 농산물 관련 조치였다. 농업생산을 발전시키고 농부산물 공급을 안정시키며 농산물 유통비용을 줄이자는 것 등이 골자인데, 대부분 구조적 걸림돌을 손대야 하는 중장기적 조치들이다. 단기적으로는 시장교란 행위를 단속하는 등 임시방편 밖에 없다는 얘기가 된다.
여기에 더해 부동산 가격의 상승이 서민들의 위화감을 키우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중국 국무원이 올해 4월, 9월 잇따라 부동산시장 안정책을 내놓았지만, (신규)주택가격은 이를 비웃듯 지난해 초 이후 지속적인 상승세를 타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호황은 급격한 도시화에 따른 토지 주택부족이 주원인이지만, 토지사용권 매각수익이 지방정부 세수와 직결돼 있는 구조적 원인도 무시할 수 없다. 중앙정부 정책의 약발이 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내년엔 달러화의 글로벌 약세와 국제원자재 가격의 움직임 등도 인플레 압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곡물 원유 구리 등 21개 주요 원자재 국제시세를 가중 평균해 산출하는 CRB 현물가격 지수는 2009년 이후 몇 개월만 제외하면 지속적인 상승세이다(<그림 3> 참조). 미 연준이 경기후퇴를 우려, 추가적인 달러화 찍기(QE3)에 나설 가능성이 적지 않은 만큼 원자재 시장에선 달러화 표시 가격의 상승세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중국 외환당국이 점진적인 위안화 절상세를 공언하고 있는 만큼 국제 원자재의 달러화 가격 상승은 고스란히 중국 국내 위안화 물가 수준에 전이될 수 있다. 더욱이 중국의 올해 농산물 작황이 양호한데도 곡물 생산단가가 상승했고, 공업용 농산물 수요가 만만찮아 식량가격 상승세가 쉽게 가라앉기 어려운 것으로 관망된다.
최근 물가상승세가 과도하게 풀린 통화량 때문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최근 몇 달 새 중국 금융당국이 은행지준율과 금리인상을 잇따라 발표했지만, 총통화증가율은 17~20% 선을 유지하고 있다. <그림 4>를 보면 2007년 이미 통화량 팽창이 우려돼 지준율과 금리를 높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듬해 하반기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폭포수처럼 쏟아낸 신규대출은 최근 증가세가 둔화됐지만, 시중 유동성은 여전히 과다하다는 게 중국 국책연구기관들의 판단이다.
12월 초 열린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회의는 이 같은 우려를 반영, 2011년 정책기조를 ‘적극적 재정과 온건(穩健)한 화폐정책’으로 확정했다. 화폐정책만 ‘적당히 느슨한(适度宽松)’ 기조에서 온건한 노선으로 바뀐 것이다.
재정의 적극적 역할은 지난해 말부터 지속돼온 내수부양과 내년에 시작되는 12?5의 성공적인 ‘첫발(開局)’을 위해 불가피하다. 산업인프라 구축, 미래산업 육성, 지역차별 해소 및 사회복지 확충 등에서 재정의 역할은 여전히 절대적이다. 반면 화폐정책은 경제성장 목표부터 ‘성장률 유지(保成長)’에서 ‘온건한 성장’으로 궤도를 수정한 만큼 현재보다 긴축적인 방향으로 선회할 것이다.
올 가을 치솟고 있는 물가가 내년 춘졔의 성수기를 맞아 폭등세로 돌아선다면, 구조개혁 조치가 그 범위나 집행시기 면에서 조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 공산당은 12?5 기간 대대적인 가격개혁 및 소득분배 개혁을 예고하고 있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주요 필수재화의 가격상승 및 임금 농산물 상승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6. 징후(京滬)고속철 개통, 고속철 시대의 본격화
정치 수도인 베이징과 경제 중심 상하이를 잇는 전장 1,318km의 징후 고속철이 2011년말 개통된다. 최근 1단계 노선 연결공사가 완공된 데 이어 역사 건설, 노선 주변 정비 등 2단계 공사가 진행 중이라고 현지 언론이 보도하고 있다.
중국에서 고속철이 처음 등장한 것은 베이징 올림픽 개막 직전인 2008년 8월 베이징~텐진 구간이었다. 이어 베이징~타이위안(太原), 이듬해엔 청두(成都)~총칭(重慶) 구간과 광저우(廣州)~우한(武漢) 구간이 각각 개통됐다. 그런데도 징후 고속철의 완공이 내년 화두가 될 것으로 전망되는 것은 향후 개통될 고속철 구간을 감안하더라도 노선이 가장 길고, 연해지역 주요 도시를 관통하기 때문에 정치 경제적 파장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그림 5> 참조).
베이징과 상하이는 중국 최고의 도시라는 자긍심이 강해 미묘한 경쟁관계에 놓여있지만,각각 화북과 화동지역의 경제를 이끄는 중핵도시이다. 아울러 1989년 장쩌민(江澤民) 당시 상하이 당 서기가 덩샤오핑의 발탁으로 전격적으로 중앙 권력무대로 진출한 이후 권력층 내부의 상하이와 베이징 파벌간 힘겨루기는 홍콩 언론들이 중국 정치 권력 투쟁을 소개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이기도 하다. 유서 깊은 라이벌 도시가 5시간 ‘경제거리’에 묶이게 되는 것이다.
중국 철도운송의 발전과정은 독특하다. 서구의 산업발전 단계를 몇 단계 뛰어넘는 비연속적 캐치업(catch-up) 과정이 고속철 도입에서도 나타난다. 고속철도의 종주국인 독일 프랑스 등에서는 일반 철도운송이 먼저 대중적으로 발달하고, 이어 고가의 운송수요가 부상하면서 고속철 분야 개발 및 투자가 이뤄졌다. 그러나 중국은 1990년대 말까지 폭증하는 운송수요를 주로 도로교통으로 충족시키려 상대적으로 도로투자를 강화하는 쪽을 택했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도로운송의 한계가 분명해지자, 뒤늦게 철도운송의 중요성에 주목하기 시작하지만 이 단계에선 철로교통은 고속철 시대로 넘어가 있었던 것이다.
중국 철도부의 중장기 계획은 고속철도를 대거 확충해 여객운송 수요를 해결하고, 화물운송은 일반 철도에 맡겨 심각한 산업 병목현상을 타개한다는 것이 골자이다. 이 계획에 따르면 중국 고속철로는 2011년 7,000km, 2012년엔 1만3,000km로 확정되며 10년 뒤엔 지구촌 고속철로의 절반 이상이 중국 대륙에 깔릴 전망이다. 중국 고속철은 중국 대륙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4종4횡(四縱四橫)의 형태를 띠게 되는데, 이 중 징후 고속철이 가장 경제적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이다.
사실 고속철의 운수혁명은 이미 시작됐다. 고속철의 경쟁상대인 항공운송업체들이 속속 단거리 노선을 폐지하고 장거리 운항으로 돌아서고 있다. 소요시간 기준으로 3시간 이내에선 비행기가 고속철의 경쟁력을 이기기 어렵다는 게 서구의 경험이다. 중국에선 광저우~우한 간 1,100km 노선에서 항공기와 고속철이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고, 이 보다 짧은 구간에서 항공업계가 몰락위기를 맞은 것으로 보고 있다. 징후 고속철도 양 진영의 불꽃 튀는 접전이 예상되는 노선이 될 것이다.
고속철의 확장은 중국 도시화 발전추세나 지역민들의 생활패턴, 나아가 소비시장에도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관광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장거리 출퇴근 주민이 늘면서 지역별 부동산 시세 등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막대한 물류비용 탓에 자원개발 외엔 뒤처진 서부지역도 란저우~우루무치 노선이 완공되면, 개발이 급가속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경제지도가 바뀌는 것이다.
다만 비행기와 비슷한 수준으로 책정된 고가의 운임이 고속철의 확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남아있다. 승차율이 계속 저조하다면, 고속철 투자를 집행한 재정에 큰 부담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 고속철은 향후 사회적 공익성과 (국유)기업 수익성을 모두 만족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7. 도시화의 어두운 자화상, 도시병(城市病)과 강제철거(拆遷)
베이징의 교통체증은 서울 도심권 못지 않다. 출퇴근 때엔 도심의 순환도로마다 1km 전진에 반시간 이상 걸린다. 시장조사기관인 영점조사(零点調査)의 최근 조사에서 베이징 시민들은 만성적인 교통체증으로 매월 336위안의 손실을 입는 것으로 나타났다. 베이징 인구 1,900만 명을 대입해보면 천문학적인 손실이다. 베이징뿐 아니라 상하이의 구도심(浦西)도 심각한 교통체증 때문에 외지 번호판 차량의 통행을 제한할 정도이다.
1978~2008년 사이 중국 도시화 비율은 17.9%에서 45.7%로 매년 0.93%p씩 높아져 도시인구는 6억 700만 명까지 늘어났다. 항구적인 도시호구를 받지 않은 유동인구까지 감안하면 도시에 생활터전을 마련한 인구는 7억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매년 1%p 정도씩 도시인구가 늘어난다고 가정해도, 웬만한 유럽국가의 인구가 이동하는 셈이다.
베이징 시 정협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말 기준 베이징의 실제 상주인구는 1,972만 명이었다. 반면 11?5 규획에서 상정한, 2008년 도시 인프라가 포용할 수 있는 최대인구는 1,625만 명이었다. 수용능력을 넘어선 300만 명이 바로 교통체증, 교육시설 태부족, 의료기관 장시간 대기, 전력공급 불안, 환경오염 등을 불러오는 주범이 된다. 도시 토박이들의 눈엔 급격한 도시화 바람을 타고 떼지어 몰려오는 외지인들 때문에 ‘도시병(城市病)’이 도지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도시화의 진전은 중국 정부가 간절히 바라는 정책 방향이다. 농업, 농촌의 현대화와 농민소득 증대란 삼농(三農)정책의 성공이 농업인구의 성공적인 도시 전입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도시화는 각종 생활서비스 분야의 비약적인 성장을 촉진하는 등 내수시장 확대의 첨병 역할을 할 수 있다. 경제구조 전환과도 맞물려 있다는 의미이다.
도시화란 법적으로 농업호구 보유주민들을 도시호구로 전환시켜야 완성된다. 최근 쓰촨(四川)성의 대표도시인 청두 시정부가 2012년까지 시내 도농호구 구별을 철폐하고, 쌍방의 자유로운 이전을 허용하겠다는 혁신적인 호구개혁안을 공개했다. 청두 개혁안은 심지어 농민들이 토지관련 권리를 그대로 유지한 채 도시호구 진입을 허용하기로 해 중국 사회주의 건국 이후 최초로 ‘토지권리를 가진’ 도시민이 탄생할 것이란 기대를 낳고 있다. 청두와 더불어 도농개혁시범특구로 지정된 인근 총칭시도 지난 7월 호구개혁을 개시, 3개 월 만에 35만 명이 도시호구를 취득했다. 내년엔 무려 335만 명이 도시호구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
성도 총칭의 개혁안이 자리를 잡으려면, 토지권리 행사에 따른 법적 문제점 정리와 대규모 사회보험 재정 확충 등 선결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아울러 농촌호구 보유자의 도시진입으로 발생하는 ‘도시병’을 완화시켜야 하는 난제가 남아있다.
도시병을 성공적으로 치유하려면, 필연적으로 도시 경계를 넓히거나 기존 도시구역의 재개발사업을 벌여야 한다. 그 과정에서 무리한 철거(拆遷)가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세수확대를 노리는 지방정부의 방조 속에 개발일정에 쫓긴 부동산개발업체들이 강제철거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장수(江蘇)성 이황(宜黃) 현에서 강제철거에 항의하던 주민 3명이 분신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2003년부터 부쩍 늘어난 철거 관련 분규는 올해 관련 언론보도만 2,060건에 달했고 내년에도 중국 사회를 뜨겁게 달굴 것이 분명하다.
중국 정부는 내년 3월부터 부동산개발업체의 직접 철거를 금지하기로 하고, 부정 공무원들을 문책하고 있으나 임시방편에 그치고 있다. 급격한 도시화와 철거분규는 국가주도 경제발전 모델에선 불가피한 부작용으로 치부되는 분위기이다.
8. 인수합병 시장의 강자, 중국기업들
최근 중국의 광밍(光明)식품이 세계적으로 지명도가 높은 건강식품업체인 GNC 인수협상을 벌이고 있다. 매입금액이 30억 달러에 이르는 초대형 인수다. 미국기업인 GNC가 전세계에 펼쳐놓은 7,100개의 매장이 중국기업의 영업망으로 문패를 바꿔달게 된다.
지난 8월엔 중국 토종자동차업체인 지리(吉利)의 볼보자동차 인수가 일단락됐다. ‘안전하고 단단한’ 이미지를 가진 글로벌 세단 브랜드가 지리로 넘어감에 따라 지리의 세계시장 진출도 날개를 달 수 있게 됐다.
올해 3분기 중국기업의 해외 M&A 사례는 금액이 공개된 것만 12건에 52억 달러어치이다(<표 2>와 <그림 6> 참조). 2009년 하반기~올 상반기 해외 인수합병은 342억 달러에 이른다. 이 같은 공격적인 M&A는 2011년에도 더욱 강화될 것이다. 중국 자본시장의 풍부한 유동성, 중국 대형 국유기업들의 엄청난 자금동원력, 그리고 갈수록 강세를 더해가는 중국 위안화의 위력이 삼박자를 이루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이미 글로벌 비즈니스 업계에서 미국 일본에 이은 위상을 자랑한다. 2010년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에 모두 46개가 포진했는데, 이중 비금융 B2C 기업만 7개나 됐다. 이들은 치열한 내수경쟁 탓에 떨어진 수익성을 해외시장 매출에서 만회하려 시도하고 있다. 시장지배력이 높고, 브랜드 파워가 우수하며, 기술자원이 우수한 기업들이 타깃이다.
그렇지만 전반적 추이를 볼 때 중국기업들의 인수합병은 제조업 분야보다 광업이나 금융물류 서비스 등의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를 보인다. 중국 경제에 시급한 원자재 확보와 서비스 산업 경쟁력 강화의 디딤돌로 활용하겠다는 계산이다.
이 때문에 중국 기업의 해외진출은 정부와 국유상업은행의 지원을 받고 있다. 정책적으로 지원할 만한 인수대상이라면, 자금지원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만 이러한 인수합병 건은 중앙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중국 정부관리가 인수합병 상담에 깊숙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2005년 미국의 유노컬, 2009년 호주의 리오틴토사의 매각협상은 사실상 상대국 정부가 나서 백지화시켰다. 국가전략적인 M&A인 만큼 정치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M&A 시장의 큰 손이었던 미국 영국 일본이 주춤거리고 있다. 내년에도 선진국 경제의 침체가 예상되는 만큼 선진국 기업들이 공세적으로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다(<그림 7> 참조). 이미 6%대로 부상한 중국의 글로벌 인수합병 시장 점유율은 내년 중에도 지속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높일수록 한국 기업들의 생존공간은 좁아질 수 있다. 한국기업들이 중국기업에 우위를 보였던 글로벌 마케팅 경험까지 중국기업들이 확보하기 시작한 때문이다. <끝>
http://www.lgeri.com/economy/overseas/article.asp?grouping=01010200&seq=554
유행어로 본 2010년 중국 소비 트렌드
썬쟈 | 2010.12.13
‘세계의 공장’ 중국이 ‘세계의 시장’으로 화려한 변신을 시작하고 있다. 최근 중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유행어가 바로 중국사회를 들여다 보는 창이자 소비시장의 코드를 읽을 수 있는 키워드라 할 수 있다. 새로운 트렌드를 나타내는 유행어들은 중국의 대도시 소비문화가 선진국의 소비트렌드와 상당히 동조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올해 중국경제의 최대 화두는 단연 ‘소비’였다. 연초에 개최된 전인대에서 얼마 전 막이 내린 제 17기 5중 전회까지 모두 ‘내수확대’를 키워드로 삼았다. 향후 5년간 중국경제의 가이드라인 격인 12차 5개년 규획도 역시 내수 중심의 성장방식 전환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내수시장의 역할이 부각되면서 중국의 ‘세계시장’으로의 화려한 변신은 이제 본격화되고 있다. 정부의 강력한 소비확대 의지와 지속적인 소득증대에 힘입어 소비재판매액이 매년 15% 이상 증가하는 등 내수규모의 팽창세가 두드러지고, 세계 최대의 자동차, LCD TV 소비국 등 다양한 세계기록까지 줄줄이 세워졌다. 명품 사냥에 나서는 중국인 관광객, 중국 대도시 백화점마다 넘쳐나는 인파 등만 봐도 중국인의 소비욕구와 뜨거운 소비열기를 확인할 수 있다. 중국 내수시장 개척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기업들은 중국 전략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최근 중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유행어가 바로 중국사회를 들여다 보는 창이자 소비시장의 코드를 읽을 수 있는 키워드라 할 수 있다. 특히 유행어는 새로이 대두되는 트렌드를 엿볼 수 있는 지름길이며, 중국 소비시장 변화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매년 중국 각 기관이 발표하는 유행어가 수없이 많지만 주로 소비형태와 연관되는 유행어를 중심으로 중국 소비환경과 트렌드를 살펴본다.
웨이보(微博)시대 : 정보화가 가져온 소통의 소비시대
요즘 중국 네티즌 사이에 ‘오늘 당신 목도리 짰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목도리(圍脖)’의 발음이 마이크로 블로그를 뜻하는 ‘웨이보(微博)’와 비슷하기 때문에 ‘블로그를 했나’와 같은 의미이다. 트위터가 금지된 중국에서는 (편법적으로 접속 가능) 최대 포탈사이트 SINA(新浪)가 제공하는 ‘웨이보’ 서비스가 최근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140개 이하의 단문을 실시간 올릴 수 있고, 다른 회원을 팔로우(follow)할 수 있는 이 ‘중국판 ‘트위터’가 2009년 8월에 개설된 이래 사용자가 이미 7천만 명을 넘어섰고, 내년에 1억 명을 돌파할 전망이다(<그림 1> 참조). 올 하반기부터 매달 평균 1천만 명이 새로 가입하고, 초당 40여 개의 단문이 생겨날 정도로 전파 속도도 엄청나다. 40% 이상의 회원이 휴대폰을 통해 사이트를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은 ‘웨이보’가 이미 일반인의 생활에 많이 침투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 인기 배우 자오웨이(趙薇)의 팔로우어가 400만 명을 넘었고, 그녀가 한 마디를 올릴 때마다 수천 개씩 댓글이 달린다.
이러한 정보화 인프라의 확산이 중국의 소비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정보의 전파와 획득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구매하고자 하는 제품의 상세한 정보는 물론 사용자들의 평가도 한 눈에 볼 수 있게 된다. 이제 옥석이 너무나 투명하게 들어나 숨길 수가 없다. 중국에서 자신이 구매한 상품 리스트부터 상품에 대한 평가와 사진까지 모두 실시간으로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는 사람을 ‘싸이크(晒客)’라고 부른다. ‘햇볕을 쬔다’를 의미하는 ‘晒’자가 여기서는 정보를 드러내게 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어떤 제품을 구입하기 전에 ‘웨이보’ 검색을 통해 최신 가격정보와 평가를 확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운이 좋으면 해당 업체의 ‘웨이보’에서 할인쿠폰을 다운 받을 수 있거나 무료체험의 기회도 얻을 수 있다. 예컨대 ‘난 할인을 좋아해 (我愛打折)’라는 웨이보에서 베이징 지역의 최신 할인상품의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기업들도 브랜드 지명도를 높이기 위해 ‘웨이보’ 마케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 동방항공은 ‘웨이보’를 통해 여승무원들이 세계각지에서 찍은 사진, 일반인들이 보기 힘든 비행기의 조종실, 기내식의 준비과정 등 승무원들의 일상을 공개해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고객과의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채널로 활용해 고객들의 질문과 어려움을 신속히 해결해주고 있다. 상하이의 한 승객이 공항의 VIP룸에서의 커피메이커가 고장났다는 글을 웨이보에 올리자, 10분 후에 수리 담당자가 현장에 도착했다. 지난 8월 휴대폰을 비행기 안에 놓고 내린 후 웨이보에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올린 한 승객이 승무원의 도움을 받아 이미 다른 도시로 떠난 비행기에서 자신의 휴대폰을 되찾게 된 사연이 알려지면서 네티즌들로부터 동방항공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다.
자사호(紫沙壺)를 전문 판매한 로컬 업체인 ‘창호저(藏壺者)’도 ‘웨이보’로 고객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자사호에 관심을 가진 사람한테 중국의 차문화와 관련 지식을 알려주고, 고객을 친구로 삼아 자사호 수집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어디 가면 좋은 차를 구매할 수 있는지를 수시로 공유하는 게 고객유치의 비결이라고 한다.
물론 탄생한지 1년 밖에 된지 않은 중국 ‘웨이보’의 사용자는 아직 20, 30대 젊은 층에 집중되고 있으며, 기업들이 웨이보에 대한 인지도와 활용도도 높지 않은 걸음마 수준에 있다. 그러나 빠른 확산속도를 볼 때 중국에서도 소비자와의 소통이 중요해지고, 사이버 영역의 마케팅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류배우 이다해가 중국에서 ‘웨이보’를 개설한 후 몇 달 만에 팔로우어가 32만 명을 돌파한 것을 감안할 때, 웨이보를 통한 한류 마케팅의 전망도 결코 어둡지 않아 보인다.
성뉘(剩女)경제와 타(她)경제 : 소비시장 뒤흔들 여성 파워
한국에서 골드미스가 있다면 중국에서는 ‘성뉘(剩女)’가 있다. 직역하면 배우자를 찾지 못해 ‘남은 여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성스러운 여자’라는 뜻의 ‘성뉘(聖女)’와 발음이 같기 때문에 조건이 까다로워 남성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는 뉘앙스도 담겨 있다. 고학력, 고소득, 고직위, 이른바 ‘3고(高)’ 특징을 지니고 있는 이들 독신여성들은 대부분 자기성취욕이 높으며 자신에 대한 아낌없이 투자를 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구매파워가 점차 커지면서 특정한 경제계층을 형성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골드미스는 30대 이상인 미혼여성을 가리키는 반면, 중국에서의 커트라인은 28세이다.
그렇다면 중국 ‘성뉘’들의 경제력이 과연 어느 정도일까? 올해 중국 충칭상보(重慶商報)가 내놓은 중국의 첫 번째 ‘성뉘 보고서’에 따르면 성뉘의 78%가 월소득이 4,000위안 이상으로 전국평균의 1.7배에 달했으며, 75%는 저축이 5만 위안(약 850만원) 이상이다. 성뉘의 83.6%는 자신의 집을 소유하고 있는 가운데 16.4%가 여러 채 주택의 소유주로 밝혔다. 자가용을 갖고 있는 성뉘의 비중도 29%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대상이 내륙도시 거주자라는 점을 감안할 때 (충칭과 베이징의 소득격차가 2.1배), 연해대도시의 성뉘들의 구매력이 더욱 높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베이징 등 대도시에서 결혼적령기의 미혼여성이 1/3를 넘어서면서 이들을 겨냥하는 제품과 서비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전문직 성뉘들의 경우 평균 소득의 82%를 자신을 위해 소비한다. 주요 소비제품은 의류 및 화장품, 여행상품, 디지털제품 순으로 조사되었는데, 특히 ‘신선도 유지를 위한 소비(保鮮消費)’가 성뉘시장의 키워드로 부상했다. 각종 노화방지 기능성 화장품, 피부관리 회원권 등은 시간을 되돌려준다는 광고를 내세워 청춘의 꼬리를 잡고 싶은 성뉘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각종 온라인 결혼정보회사에 이어 다양한 유료 연애 강좌, 싱글을 위한 사교장소를 제공하는 회원제 클럽 등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이 밖에 혼자 사는 이들을 위해 1인용 미니 가전제품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 로컬 가전업체 HAIER의 2.8kg짜리 미니 세탁기가 최근 대표 온라인 쇼핑 사이트인 타오바오(淘寶)의 베스트 셀러 리스트에 올라 눈길을 끌고 있다. 한국에서 초콜릿 과자를 주고 받는 빼빼로데이인 11월11일은 중국에서 ‘싱글의 날(光棍節)’로 각종 미니가전 등 싱글 용품의 판촉이 활발하게 이뤄진다.
성뉘뿐만 아니라, 최근 중국 여성이 전체 소비시장을 이끄는 주력계층으로 떠오르면서 ‘여성경제’를 뜻하는 ‘타(她)경제’란 유행어도 중국 신문지면에 오르내리고 있다. 먼저 중국여성은 한국여성에 비해 경제적인 독립성이 비교적 높다.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것은 대부분의 중국 도시 여성에게 생각조차도 해보지 못하는 딴 세상 얘기다. 중국여성의 취업률이 74%로 세계평균인 53%를 크게 웃돌고, 여성 취업인구가 사회전체의 45%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의 도시 여성들은 전체수입의 약 63%를 지출하는데 특히 여행, 디지털제품 등 자기자신을 위한 지출이 빠르게 늘고 있다. 또한 약 78%의 중국여성은 ‘남편의 돈은 바로 내 돈이고, 내 돈도 내 돈이다’라는 관념을 가지고 가정의 재정 통제권을 쥐고 있는 한편, 브랜드와 디자인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온라인 쇼핑에 열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아예 여성전문 제품분야에 특화한 중국 로컬업체도 적지 않다. 2009년 설립된 여성전용 휴대폰 업체 DOOV(朶維)는 여성스러우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으로 다른 업체와 차별화된 휴대폰에 주력하고 있다. 여성들의 관심사인 미용/다이어트, 별자리 등 정보를 바로 검색할 수 있는 메뉴가 탑재되어 있고, 위험에 처할 때 버튼 하나만 누르면 경찰에 신고할 수 있는 기능도 선보이고 있다. 중국 전자제품 중의 ‘Chanel No.5’로 불리는 DOOV 휴대폰은 신제품 출시 몇 달 만에 수십만 대가 팔리는 등 매출액 증가세가 지속되고 있다.
디탄주(低炭族) : 녹색생활에 눈을 뜬 중국 소비자
아침에 일어나 자전거로 출근하고, 점심 및 휴식시간에 컴퓨터 모니터를 꺼두며, 집에 있는 조명을 LED램프로 교체하는 이른바 친환경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디탄주(低炭族)들이 중국 대도시 중심으로 증가하면서 2010년의 새 화두가 되고 있다. 중국이 지난 2009년말 코펜하겐 회의에서 GDP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05년 수준의 40%까지 감축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올 연초 전인대에서 ‘저탄소 경제’란 개념을 도입한 것이 배경이었다. 마오푸(猫扑), 도우반(豆瓣)등 인기 포탈사이트에서 ‘저탄 생활’ 관련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고, 하루에 자신의 활동으로 얼마나 많은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었는지 계산할 수 있는 온라인 온실가스 배출 계산기도 관심을 끌고 있다. 투명화장을 하고 천연소재 의류를 착용하며 채식을 즐기는 자연주의적 여성을 의미하는 ‘승뉘(森女)’, 재활용 제품을 선호하고 늘 가위를 갖고 DIY를 열중하는 사람을 일컫는 ‘젠젠족(剪剪族), 일회용 제품을 지양하고 손수건처럼 반영구적 제품을 고집하는 사람을 뜻하는 ‘파크(帕客)’등 ‘디탄주’와 일맥상통한 유행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친환경 바람이 불면서 관련 산업도 서서히 태동하고 있다.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淘寶)의 검색창에 ‘저탄(低炭)’이라는 키워드로 상품 검색한 결과, 생활용품에서부터 가전제품, 장난간, 심지어 애완용품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7만 여 개의 상품이 검색되었다. 저탄소 대나무 섬유 수건, 저탄소 노트북, 저탄소 고양이용 모래 등 ‘저탄(低炭)’은 이제 상품가치를 높일 수 있는 웰빙과 친환경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는 마케팅 키워드로 인식되고 있다.
중국 바닥재 매출 1위 로컬업체인 셩샹(聖象)은 올해 최초로 재생가능 친환경 대나무 바닥재를 시장에 내놓아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 가정에서 대부분 나무 바닥재를 사용하지만 최근 일부 요가, 웰빙을 추구하는 중산층 ‘디탄족’ 사이에 가격이 고급 나무바닥재와 엇비슷한 대나무 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 로컬 자동차 업체 BYD사는 월 판매량이 만 대를 돌파한 ‘저탄소 자동차 모델’ G3의 마케팅 행사로 ‘저탄 달인’ 경기를 주최해 ‘저탄’ 마케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 밖에 ‘에너지 절약 기능’이 탐재돼 기름 사용량과 이산화탄소 배출량 등을 표시하는 네비게이션, 세제가 필요 없는 세탁기, 접이식 전기자전거 등도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디탄주’는 몇 년 전부터 대두된 ‘러훠주(樂活族, LOHAS)’와 서로 중첩되는 부분이 많다. 건강추구와 웰빙은 양자가 모두 공유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중국인이 아침식사로 즐겨먹는 두유를 직접 집에서 위생적이고 영양가 있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두유제조기의 판매량이 배로 증가했고, 건강관련 서적이 베스트셀러 1위로 오른 것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다만 소득이 상대적 낮은 ‘디탄주’들은 절약의식이 강하고 저탄소와 저비용을 연결시키는 경향이 있는 반면, 고소득 ‘디탄주’들은 유기농 식품, 천연비타민 등 고가제품을 선호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 중국의 ‘디탄주’와 ‘러훠주’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미미하다. 하지만 중국의 시장규모를 감안할 때 사회 일부에서만 확산되더라도 기업에게 타겟 시장으로서의 매력도는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소득 증대, 환경의식 제고 등에 따라 이러한 트렌드가 지속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투안누(團奴) : 공동구매, 새로운 유통구조로 부상
베이징의 한 대기업 직원 탕모씨가 지난 5월에 메이퇸왕(美團網)이란 중국 대표 인터넷 공동구매 사이트에서 48위안을 주고 398위안 짜리의 피부관리 사용권을 구입했다. 이를 시작으로 저가의 유혹에 빠진 탕모씨는 한 달 동안 15개 사이트에서 22차례 공동구매를 했으며 월급의 60%에 달하는 2,800위안을 사용했다. 탕모씨처럼 자기도 모르게 단체구매의 노예, 이른바 ‘투안누(團奴)’가 되어버린 중국인들이 올해 크게 증가했다. 특히 25~35세의 젊은층 가운데 51.3%가 공동구매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공동구매는 2010년에 중국에 상륙한 새로운 모델이지만 놀라운 성장세로 중국 유통시장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 구루폰(Groupon)의 성공모델을 본 딴 중국 최초의 공동구매 사이트 만줘왕(滿座網)이 올 1월에 오픈 한 이후 7개월 만에 사이트 수가 1천 개를 돌파했다(<그림 2> 참조). 매일 공동구매 사이트 방문객수가 전체 네티즌에서 차지하는 비중만 따지면 중국은 4%로 한국(2.7%)보다 더 높게 나타난다(iResearch, 2010년 9월 기준). 10월말 현재 월간 단체구매에 직접 참여한 네티즌은 1,074만 명에 달할 정도로 그 열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중국의 공동구매 사이트는 보통 하루에 1~5개 제품만 구매할 수 있도록 한다. 이벤트 성이 농후하고, 대도시 소비자를 중심으로 제품 홍보효과의 극대화를 도모하는 측면이 강하다. ‘오늘의 제품’ 관련정보는 늘 사진과 상세한 설명으로 되어 있고, 이를 ‘웨이보(微博)’, MSN 등으로 퍼갈 수 있는 링크, 해당 업체의 약도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공동구매 참여자들의 구매 후기와 평가를 올릴 수 있는 게시판, 반품 서비스도 모두 마련되어 있어 소비의욕을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최근에 급증하는 공동구매 사이트를 연계하는 디렉토리 사이트가 생기면서 소비자들이 더 쉽게 자기가 원하는 제품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중국에서 공동구매가 뜨는 이유로 먼저 파격적인 가격 할인을 들 수 있다. 중국 소비자 중 상당수가 가격위주의 실용주의적 구매성향을 가지고 있어 70~90%에 이르는 할인율은 그들의 충동구매로 쉽게 이어진다. 공동구매 상품 가운데 뷔페 식사권, 스파 이용권 등 고가품이 많아 살림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삶을 영위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결제와 배송 등 인터넷 쇼핑의 여건이 점차 성숙되고 있다는 점도 공동구매 사이트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다. 최근 중국에서 온라인 쇼핑몰을 구경하다가 구매의욕(풀)이 자꾸 생겨나 결국 지갑을 열게 된(풀을 뽑은) 사람, 이른바 ‘차오족(草族)’도 유행어 사전에 올랐다. 2010년 상반기까지 중국 4.2억 명 네티즌 중 온라인 쇼핑 이용자 수가 1.42억 명으로 전체의 34%를 차지했다. 지난해 온라인 쇼핑 거래금액의 증가율이 94%로 성장성이 가장 빠른 산업으로 손꼽을 정도다. 2013년까지 성장률은 다소 둔화되지만 전체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를 넘어설 전망이다(<그림 3> 참조). 미국 월마트, 패션 업체 GAP, Coach와 같은 글로벌 기업도 중국 온라인 시장의 유망성을 보고 내년 중 중국에서 인터넷 쇼핑몰을 개설할 계획이다.
중국의 온라인 공동구매 모델은 아직 동질화, 과다경쟁 등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구조조정을 거쳐 안정적인 성장의 길을 모색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 온라인 구매를 점점 익숙해진 중국 소비자가 한국기업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푸옹(負翁) : 소득능력 이상으로 소비하는 중국인
중국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 종종 벌어진다. 월급 약 80만원을 받는 20대 사원이 2,000~3,000만원 대의 외제 승용차를 몰고 출근한다. 한 달에 50만원 받는 신입사원은 200만 원짜리의 LV 가방을 착용하고 스타박스 커피를 달고 산다. 특히 대도시의 젊은 화이트컬러 사이에 이런 현상은 흔히 볼 수 있다. 이들은 부자 집안 출신이 아니라 대부분 ‘푸옹(負翁)’대열에 속한다. 부자를 뜻하는 푸옹(富翁)와 발음이 같지만 ‘부채’의 ‘負’자를 씀으로써 초과지출을 통해 부자처럼 보이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무리하게 자가용을 구입한 대가로 어렵게 생활하는 사람을 뜻하는 쳐누(車奴), 신용카드 빚으로 스트레스 받고 있는 사람인 ‘카누(卡奴)도 같은 맥락에서 파생된 유행어들이다.
중국소비자의 트레이딩 업(Trading up) 란 특징이 여기서 잘 나타나고 있다. 즉 자신에게 만족감을 주는 특정 상품에 대해서 소득수준 이상의 소비를 기꺼이 한다는 것이다. 고급승용차, 명품 가방 자체가 기능적으로 필요하다기보다 자신이 더 나은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우월감과 자신이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실현하려는 강한 욕구로 구매행위가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강한 ‘체면의식’과 ‘과시의식’도 이러한 ‘무리한 소비’를 부추기는 원인이다. 일례로 상하이 젊은 층은 첫 승용차를 구입할 때 대부분 중고차가 아닌 새 차를 선택하고, 중국산 저가 소형차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경제에 대한 낙관적 전망과 미래 소득 증가에 대한 자신감도 한 몫을 하고 있다. 다만 제한적인 소득으로 트레이딩 업만 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명품가방을 구매하기 위해 3개월 동안 외식을 하지 않고 허리띠를 조르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50%의 중국소비자가 트레이딩 다운을 통해 절약한 돈으로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비싼 제품을 구매하는 트레이딩 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메킨지, 2010).
트레이딩업과 함께 최근 중국에서 명품의 대중화, 즉 매스티지(masstige) 현상도 두드러지고 있다. 명품보다 가격이 저렴한 중고급 제품, 예컨대 DKNY, Coach 등이 최근 명품을 원하지만 지갑이 가벼운 젊은 직장인들의 ‘must have’ 리스트에 올랐다. Coach는 2013년까지 중국에서 50개 전문매장을 신설해 시장점유율을 10% 이상 올릴 계획이다. 일반 소비자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명품을 구입할 수 있는 온라인쇼핑몰, 아울렛 등도 곳곳에 생겨났다. 루이비통이 중국 29개 매장의 전 품목을 2~7%할인 판매하는 등 기존 명품업체들도 가격인하 마케팅 전략을 펼치고 있다. 한국의 유명 브랜드도 이와 같은 트렌드를 주목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
번번주(奔奔族) : 뜨고 있는 ‘스트레스 해소 소비’
‘만만디’ 중국인도 이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생활리듬이 빨라지면서 치열한 경쟁 속에 동분서주하고, 치솟은 집값, 교육비, 의료비 등으로 허리가 휘는 사람들, 이른바 ‘번번주(奔奔族)’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특히 1975년~1985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가 중국사회에서 가장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극심한 취업난을 극복하기 위해, 또한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각종 어학시험 및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증누(證奴, 자격증의 노예)’뿐 아니라, 화이트칼라가 되었는데도 일에 묻혀 살고, 주택대출금에 발목 잡혀 회사 그만둘 수도 없는 바이누(白奴?화이트칼라 노예)도 상당수다.
중국 청년보(靑年報)가 발표한 ‘2010년 대도시 중국인의 정신건강 조사 결과’에 따르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응답이 82%, ‘초조감, 피곤함을 늘 느낀다’는 답변도 절반을 차지했다. 특히 전국 각지의 인재가 몰리고 경쟁의식이 강한 상하이의 ‘스트레스 지수’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가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에게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가져오고 있다. ‘스트레스 해소 욕구’를 만족시키는 ‘감압(減壓)소비’가 최근 대도시 직장인 중심으로 대두되었다. 스파, 마사지, 아침식사 배달서비스 등 기존 방식 이외에 이색적인 아이템도 많이 등장했다. 베이징 하이덴(海淀)구에 위치한 ‘스트레스 해소 식당’에서 사람 모양이 그려진 ‘화풀이 벽’을 향해 그릇, 솥 등 식기를 맘껏 때려 부술 수 있다. ‘용기’, ‘8시간 수면’, ‘away from the keyboard’ 등 심리적 암시 효과가 있는 글자가 쓰여진 빈 병을 판매하는 ‘마음슈퍼 (心靈超市)’, 생활 리듬을 늦추기 위해 한 끼 식사를 두 시간 이상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천천히 식당(慢餐廳)’등이 화제가 되고 있다. 대도시 근교에 있는 야채 밭을 임대해 주중에 관리자에게 맡기고 주말에 직접 농원생활을 즐기는 방식도 베이징, 상하이 직장인 사이에 새로운 스트레스 해소법이 되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스트레스 해소용 장난감도 히트상품 반열에 오를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던지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찌그러지지만 다시 원래대로 회복하는 ‘깨지지 않은 토마토’, 입을 항아리에 대고 마음껏 소리 지를 수 있는 ‘외침 항아리’ 등 엽기적인 아이디어 상품이 많다. 아직은 독창적인 아이템보다 일본, 한국제품을 모방하는 경우가 많지만 중국 젊은 층의 이색적인 제품을 선호하는 ‘펀(Fun) 소비’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중국 직장인의 희로애락을 그린 어른용 만화 ‘장샤오허(張小盒)’, 그리고 많은 중국 직장 여성의 결혼관과 처신술을 반영한 애니메이션 케릭터 ‘희양양(喜羊羊)’도 수천만 관객을 얻은 인기 작으로서 젊은 화이트칼라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받았다.
글로벌 동조화 속의 중국적 특징을 찾아라
다양한 유행어에 담은 중국의 소비형태를 살펴보면 다른 선진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트렌드와 매우 유사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그림 4> 참조). 소득수준 향상과 글로벌 문화와의 동조화로 중국에서 선진국형 소비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상하이 도심의 거리를 거닐다 보면 하겐다즈, TGIF 등 글로벌 브랜드가 곳곳에 눈에 띄는 등 세계 여타 국제화 대도시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다만 유행어는 주로 중국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일어난 현상이라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올해 중국의 평균 1인당 GDP가 4,000달러에 불과하지만 인당 GDP 1만 달러의 고지에 올라선 도시가 벌써 10여 개나 됐다. 특히 해당 도시의 중?고소득 계층이 선진국과 비슷한 소비특징을 나타내고 있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프리미엄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외자기업으로서 그 ‘의미 있는 소수’를 남보다 한 발 앞서 이해하는 게 승부의 관건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글로벌 시장전략을 그대로 중국에 적용해선 안 된다. 유행어 속에 나타난 현상 가운데 올해 갓 생긴 ‘뉴 트렌드’가 많아 발전 단계상 이미 성숙기에 접어든 선진국과 매우 다른 측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용주의적 성향과 트레이딩업 등 서로 모순된 요소도 섞어져 있어 키워드만 의존하는 것보다 소비자를 소득별, 연령별로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이미 비슷한 트렌드를 경험한 한국 시장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새로운 트렌드를 비즈니스 아이템으로 실체화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끝>
http://www.lgeri.com/economy/overseas/article.asp?grouping=01010200&seq=553
중국은 평평하지 않다, 차이와 격차 알아야 중국 사업 성공한다
이철용 | 2010.12.06
중국시장 마케팅 문제를 둘러싸고 프리미엄 전략이 맞느니, 매스 전략이 맞느니 하는 논란이 그치지 않는다. ‘중국의 임금이 많이 올랐으니, 이제 베트남이나 인도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과연 옳은 접근일까?
중국 시장이 모두 똑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하나의 시장이라면 마케팅 전략에 대한 답은 하나일 것이다. 중국 여러 지역의 비용여건이 동시에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즉 동시에 악화하거나 동시에 개선된다면, ‘중국이냐, 베트남이냐’ 하는 접근에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중국의 시장은 단일하지 않고, 지역별, 세대별, 계층별로 나뉘어져 있다. 중국은 결코 평평하지 않으며, 비즈니스 환경은 지역별로 다 다르다. 중국의 다양성과 차이, 격차에 주목한다면, 적어도 비즈니스나 시장 관점에서 중국을 또 하나의 EU, 말하자면 ‘CU(Chinese Union)’으로 간주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중국 시장이 이질적인 시장들의 조합이라면, 중국 비즈니스의 승부는 속도보다는 정확성에 있다. 즉, 어느 시장이 뜬다고 해서 시장선점 욕심에 서둘러 진입했다가는 돈만 허비할 가능성이 크다. 그보다는 자사 제품에 대한 자신감과 시장을 정확히 보는 눈을 바탕으로 제한된 마케팅 역량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목 차 >
1. 중국의 다양성에 주목하는 이유
2. 중국의 다양성과 중국 비즈니스 전략
3. 중국은 결코 평평하지 않다
1. 중국의 다양성에 주목하는 이유
중국 사람들이 평생 할 수 없는 세 가지
퀴즈 하나. 중국 사람들이 평생 할 수 없는 게 세 가지 있다고 한다. 무엇일까? 정답은 ‘중국을 다 가보는 것, 중국 말을 다 해보는 것, 중국 음식을 다 먹어보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중국은 러시아, 캐나다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넓은 나라다. 기후대로 볼 때, 열대 계절풍 기후, 아열대 계절풍 기후, 온대 계절풍 기후, 온대 대륙성 기후, 고원 산지 기후 등 5개 기후대가 걸쳐 있다. 몸으로 겪는 기후대는 이보다 많은 느낌이다. 예컨대 같은 아열대 계절풍 기후대로 분류되는 광저우(廣州), 상하이(上海), 충칭(重慶)의 겨울은 전혀 딴 판이다. 상하이의 겨울은 건조하고 서늘한 반면, 광저우의 겨울은 건조하지만 따뜻한 편이다. 충칭이나 청뚜(成都)는 온난다습하다.
중국의 지형 역시 복합적이다. 산지가 전체의 1/3을 차지하고, 고원이 26%, 분지 18%, 평원 12%, 구릉 10% 등이다. 도로, 철도 등 교통 인프라가 내륙 깊숙이 뻗어가고 있지만, 중부 산간이나 광대한 서부에는 외지인 발길이 닿지 않는 오지가 아직 많다. 이러니 아무리 중국 사람이라도 중국을 다 다녀본다는 게 쉽지 않다.
기후, 지형 등 자연지리적 다양성은 민족, 언어, 식생 등 인문지리적 다양성으로 연결된다. 중국은 한족과 55개 소수민족 등 모두 56개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舊) 소련권의 몇몇 나라들과 더불어 대표적인 다민족 국가에 속한다. 소수민족 중 인구 100만명 이상이 18개나 되며, 500만명 이상이 9개, 1,000만명 이상도 2개(장족과 만주족) 있다.
민족보다 갈래를 더 많이 친 게 언어다. 중국의 언어는 5개 어계(語系)로 분류되며, 한어(漢語), 즉 현대 중국어는 그 중 하나인 중국-티벳어계에 속한다. 한어엔 7대 방언이 있으며, 같은 방언에도 하위방언이 여럿 존재한다. 예컨대 산악 지형이 많은 푸젠(福建)성의 경우 10리 이내에 사는 주민들끼리도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후난(湖南)성에선 다른 현(縣) 주민들 간에 의사소통이 어렵다고 전해진다. 중국에서 나고 자랐어도 중국말을 다 해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하겠다.
기후와 풍토가 다름에 따라 음식도 그 재료와 맛이 지역에 따라 제각각이다. ‘먹는 것을 하늘로 안다’는 중국인들은 지역마다 특색있는 음식문화를 자랑해왔다. 흔히 ‘남쪽은 담백하고 북쪽은 짜며, 동쪽은 새콤달콤하고, 서쪽은 맵다(南淡北鹹 東酸西辣)’고들 한다. 식재광주(食在廣州?‘먹는 것은 광저우가 최고’)라는 말이 있듯 광둥(廣東) 요리를 으뜸으로 치는데, 광둥요리 가짓 수만도 5,500여종에 이른다. 딤섬 종류만 800종 이상, 닭고기를 이용한 요리만도 210종이란다. 이러니 아무리 중국 사람이라도 살아생전 중국 음식을 다 맛볼 수가 있겠는가?
중국 사람들의 지역별 성격지도
자연환경과 섭생, 그리고 문화와 역사가 다르다 보니 사람들 성격도 지역별로 판이하다. 그 성격의 스펙트럼이 하도 넓다보니, 어떤 사람은 화베이(華北), 시베이(西北), 시난(西南), 화둥(華東), 화중(華中), 화난(華南), 둥베이(東北) 등 예닐곱으로 나눠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성(省)의 갯수에 맞춰 30여개로 쪼개보기도 한다. 남북으로 양단을 쳐 ‘북방 사람들은 보수적이고 남방 사람들은 유연하다’, ‘남쪽 사람은 돌려말하고 북쪽 사람들은 대놓고 말한다’고 대담하게 평하는 이들도 있다. 아무튼 타 지역 사람과 연애를 하든, 비즈니스를 하든 상대방의 문화나 사고 스타일을 따로 공부하지 않으면 자칫 큰 실수를 할 수도 있다. 그러니 지역 색깔을 다룬 책들이 대형서점의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어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그 중 하나를 뽑아 목차를 살펴보니 이렇다. 베이징에 대해서는 ‘황제의 도시 콤플렉스’가 주제어로 제시되어 있고, ‘얼음처럼 차가운 독설가’, ‘그녀의 격조를 지켜줘라’ 등이 소절 제목으로 나와있다. 상하이는 ‘서구화된 도시’가 표제어이며, ‘우월감에 젖어있는 유행에 민감한 도시’, ‘공인된 소시민 근성’,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가냘픈 남자’, ‘지혜롭고 눈치 빠른 센스쟁이’라는 구절들이 뒤따르고 있다. 광둥은 어떨까? ‘실리주의자’, ‘낭만 현실주의를 표방한 물질주의’ 등이 키워드로 제시된다. 둥베이지방의 경우 ‘강자만이 살아남는 ‘둥베이 호랑이’의 세계’, ‘모두를 가족으로 만드는 우리’ 라고 소개되어 있다.
줄어드는 차이와 다양성, 늘어나는 차이와 다양성
기후, 지형 등 지연지리나 여기에 역사와 문화가 중첩되어 형성된 인문지리 측면의 다양성은 중국 경제의 발전이나 중국 사회의 현대화에 따라 점차 약화하고 있다. 육상, 해상 및 항공 교통이 지역간 거리를 단축시키고, 교류의 장벽을 무너뜨림으로써 이러한 ‘고전적’ 지역차를 빛바래게 하고 있다. 인터넷, 무선통신 등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지리적 거리와 지형적 장벽에 구애받지 않는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함으로써 지역간 문화 차이를 융해시키고 있다.
경제 발전과 사회 현대화가 일방적으로 중국을 ‘좁히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다른 한편으론 전에 없던 새로운 다양성과 차이를 낳고, 과거에 미미한 차이에 불과했던 것을 현격한 격차로 벌려놓고 있다. 빈부격차, 세대간 격차 등이 그것이다.
빈부격차는 때로 발전된 지역과 저개발 지역 간의 경제력 격차 형태를 띠기도 한다. 즉 지역간 격차의 일부분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발전된 지역 안에서도, 저개발 지역 안에서도 빈부격차는 나타나는데, 이러한 지역내 빈부격차가 갈수록 주목을 받고 있다.
세대간 격차는 중국 경제의 압축성장의 필연적인 대가라고 할 수 있다. 개혁과 개방은 서구문물 및 문화의 유입을 동반하면서 불과 30년만에 중국 젊은이들의 의식과 문화를 서구보다 더욱 서구적인 형태로 변모시켰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존의 다양성이 줄어듦과 동시에 새로운 차원의 다양성이 증가하고, 과거의 차이와 현재의 격차가 복합적으로 공존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중국의 모습이다.
중국의 차이, 격차, 다양성에 주목하는 이유
차이와 격차, 다양성은 어느 나라에나 있다. 우리가 중국의 차이와 격차, 다양성에 주목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우리는 중국의 차이와 격차, 다양성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즉 중국도 한국이나 싱가포르 같은 그저 하나의 국가에 불과하다고 본다. ‘땅이 엄청나게 넓고 성(省) 하나가 우리나라 전체보다 큰 데, 뭔가 다르지 않겠느냐’고 하면 ‘개념적 사고가 안 돼 있다’고 핀잔듣기 십상이다. 국가 단위로 세상을 보는 국가주의 개념틀이 우리 머릿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단일민족, 단일국가,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교육을 오랫동안 받아오는 동안 이러한 시각이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국가주의 개념틀은 정치적 판단기준으론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경제적 관점, 특히 글로벌시장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입장에서는 맹목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경제학원’이나 ‘경제관리학원’(한국의 경상계열 단과대학에 해당)이 있는 중국 대학에는 대부분 해당 단과대 산하에 지역연구 관련 학과를 두고 있다. 대표적인 게 ‘지역경제학과’인데, 현재 140개 대학이 이 학과를 개설하고 있다. 이 학과에는 경제지리학, 도시경제학, 인문지리학 등의 학과목이 있는데, 지역간 차이를 규명하고 지역간 협력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주된 연구테마이다. 서부대개발, 중부굴기, 동북진흥 등 굵직굵직한 정책사업 추진으로 지역연구 관련 학과의 인기는 나날이 높아가고 졸업생 취업률도 매우 높은 편이라고 한다. 지역적 다양성에 대한 중국 내부의 인식이 이처럼 높은데, 일반적 상식을 뛰어넘어 시장을 쪼개고 묶어 비즈니스를 하는 입장에서 지역적 다양성을 간과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둘째, 중국은 다양성과 차이, 격차에 대한 오해가 가져오는 부정적인 결과와 후유증이 매우 큰 나라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誌)가 중국 진출을 모색하던 다국적 기업들에게 ‘중국에는 몇 개의 시장이 있다고 보는가?’ 하고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전체의 44%는 ‘중국엔 단 한 개의 시장이 존재한다’고 답했고, 39%는 ‘4개 혹은 그 이상의 시장이 있다’고 답했다. 4년 후 다시 조사해본 결과, ‘한 개의 시장만 있다’고 답한 회사들은 대부분 중국 비즈니스에 실패했고, ‘4개 혹은 그 이상’이라고 응답한 회사들은 성공한 것으로 밝혀졌다. 왜 이런 결과가 빚어졌을까? 중국은 인구가 많고 땅이 넓은 만큼 한 개의 시장에 투입되는 마케팅 비용이 상대적으로 크다. 투입 금액이 큰 만큼 시장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경우 초래되는 낭비와 비효율은 단위 시장이 작은 경우에 비해 훨씬 치명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이하에서는 중국에서 생산 및 판매 활동을 하는 글로벌 기업 관점에서 볼 때, 다양성, 차이, 격차 문제가 중국에서 어떻게 나타나며, 그것들을 중국 비즈니스에서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2. 중국의 다양성과 중국 비즈니스 전략
(1) 지역별 시장 및 소비패턴의 다양성
선전 사람들의 이삿짐이 가벼운 이유
개혁개방의 1번지이자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인 선전 주민의 80% 이상은 타지방 출신들이다. 갖은 고생끝에 자수성가를 한 이들도 있고, 개혁개방이 가져다준 손쉬운 기회를 낚아채 일확천금을 움켜쥔 행운아들도 더러 있다. 이들의 꿈은 금의환향(錦衣還鄕), 50을 넘어 고향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웬만한 가재도구, 특히 목재가구를 다 버리고 간다. 북쪽에 있는 고향과 아열대 기후대의 선전하고 기후가 맞지 않아 선전에서 쓰던 가구들을 고향으로 가져가봤자 뒤틀리고 금이 가 별 소용이 없기 때문이란다. 이런 버려진 가구를 수집해 중고가구점에 넘겨 손쉽게 돈을 버는 사업은, 아니나 다를까, 흑사회(黑社會?폭력조직)가 장악하고 있다고 한다.
땅덩어리가 넓으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실제로 중국에서 목재가구는 지역별 온습도의 차이를 고려해 맞춤형으로 제작된다. 가공과정에서 켜낸 목재를 화학적으로 처리하기도 하고, 아예 원목을 노천에 방치해 일정시간 적응기를 갖게 한 뒤 가공에 들어가기도 한다.
지역별 기후 차와 제품 속성 간의 관계는 내의시장에서도 비슷하게 드러난다. 중국 북쪽 지방에서는 사시사철 먼지나 황사가 날리기 때문에 때가 잘 타는 흰색 내의가 별로 환영받지 못한다. 대신 빨간색 계열이 압도적 인기를 끈다. 검은색 내의도 보온효과가 좋고 여성의 신비감을 더해준다는 이유로 잘 팔린다. 반면 남쪽에선 겨울이 그리 춥지 않기 때문에 우아한 레이스가 달린 흰색 내의가 많이 팔린다. 기후와의 궁합은 화장품의 판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색조 화장품은 북방에서 강세를 보이나, 남방에서는 잘 안 팔린다.
지역별 우유시장 구도도 비슷하다. 북방에서는 상온 저장이 가능한 팩 포장 제품 위주로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규격은 250mL의 소형이 주종이며, 가장 큰 것도 1L를 넘지 않는다. 반면 남방지역에서는 저온 냉장우유가 잘 팔리며, 포장 규격도 커서 1.5~2 L의 대형 제품이 유행하고 있다.
아우디의 실패와 하이얼의 성공
다양한 기후대에 걸쳐 있는 중국에선 제품 설계에 지역간 기후 차를 얼마나 잘 반영하는지가 사업의 성패를 가르기도 한다.
아우디는 한때 중국시장에서 좌석에 열선을 장착한 모델을 선보인 적이 있다. 하지만 고객 호응은 예상을 밑돌았다. 동북지역 소비자들은 5~6개월의 추운 겨울을 나야 하는 만큼 관심을 보일 법도 했지만, 좌석 열선을 기본으로 장착한 값비싼 모델은 원하지 않았다. 옵션으로 제시했다면 혹 결과가 달라졌을지 모른다. 한편 장강 이남 지역, 특히 광둥지역 소비자들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둥베이 사람들보다 강한 구매력을 갖추고 있었으나, 좌석 열선을 떼어낼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여기서도 겨울은 겨울인지라 다소 으슬으슬하기는 했으나, 차량 내부 히터로 충분히 견딜만 했기 때문이다. 아우디는 지역별로 천차만별인 기후 조건과 소비자 눈높이를 제대로 살피지 못해 쓴맛을 봐야 했다.
이와 정반대로, 중국 로컬기업 하이얼의 6도어 냉장고 사례는 지역별 자연지리 조건에 잘 대응하여 시장 지위를 굳히는 데 성공한 케이스다(<그림 1> 참조). 원래 6도어 냉장고가 중국시장에 첫 선을 보인 것은 2004년 일본 파나소닉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그 제품은 별 호응을 얻지 못하고 퇴출됐다. 그러다 2007년 하이얼 6도어 냉장고 브랜드인 카사르테가 대박을 터뜨림으로써 6도어 냉장고가 프리미엄 냉장고의 한 유형으로 중국 시장에서 자리잡을 수 있었다. 하이얼은 카사르테 개발을 위해 6개월여 동안 베이징, 상하이, 선전 등 전국 30여개 도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심도있는 조사연구를 실시했다. 그 결과를 제품 설계에 적용해 중국 각 지역 소비자들의 다양한 니즈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6도어 냉장고 현지화에 성공했다. 핵심은 변온(變溫) 기능 채용이었다. 6개의 공간 중 한 곳인 변온실의 온도를 영하 30도와 영상 10도 사이에서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게 하여 6가지 보관 방식을 가능케 함으로써, 다양한 기후조건과 라이프스타일의 고객이 모두 만족시킬 수 있었다. 중국 6도어 냉장고 시장에서 하이얼 카사르테의 점유율은 2010년 7월 현재 65.9%에 이른다.
도시와 농촌의 차이
농촌과 도시 간에는 라이프 스타일 차이에 따라 제품 니즈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러한 니즈를 얼마나 잘 파악하여 제품에 어떻게 잘 구현하느냐가 매출을 좌우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책으로 시행된 가전하향(家電下鄕) 프로그램은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이 정책이 농민들의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한 가지 중요안 요인은 가전업체들이 농민의 니즈를 최대한 반영한 농촌형 가전 모델을 대거 선보였기 때문이다. 세탁기의 경우 농민들이 선호하는 6~7㎏짜리 대용량을 앞세웠으며, 농촌의 물 부족 사태를 감안해 수압이 낮은 지역에서도 급수에 문제가 없도록 했다. 세탁 횟수가 적고 강한 세척력이 필요한 점을 감안하여 세탁통을 개량시켰다. 또한 전력요금 부담을 고려해 절전기능을 크게 강화했고, 손빨래 탈수기 용도로 많이 사용되는 점을 감안해 탈수기능을 강화한 제품들을 많이 내놓았다.
냉장고의 경우 냉동실을 확대하고 절전기능을 강화한 제품들이 인기를 끌었다. 도시에선 식품의 신선도 유지가 냉장고의 가장 큰 기능이다. 하지만, 농촌에서는 모름지기 냉동실이 커야 한다. 농민들은 채소, 과일, 달걀 등을 스스로 재배하기 때문에 냉장 수요가 적고, 돼지고기 양고기 등 생고기 식품의 냉동보관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아울러 전압 불안정과 잦은 단전 등의 여건을 감안할 때 절전기능, 내구성과 간단한 구조를 갖춘 제품이 요청된다.
지역별 소비관념과 소비문화의 다양성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동차 구매 시 청뚜 사람들은 연비와 고장률, 차량 유지비용 등에 주목한다고 한다. 같은 스촨(四川) 지역이지만, 충칭 사람들은 차량의 외관과 운전 편의성을 중점적으로 살핀다고 한다. 좁고 비탈길이 많은 지형상 특징과 체면을 중시하는 이 지역 사람들의 성격이 반영된 듯하다. 한편 동부 연안의 개발지역일수록 합리적인 양상을 보이는데, 예컨대 광둥 사람들은 가격을 무엇보다 중시한다고 한다.
네티즌들을 상대로 차량 구매 시 고려 요인을 물은 다른 조사 결과에 따르면, 베이징 사람들은 교통혼잡 정도를 먼저 고려하며, 상하이 사람들은 자동차 보험료율, 소비부양책 같은 정책 요인들을 꼼꼼히 따져본다. 광저우 사람들은 보험료 인상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청뚜 사람들은 정비, 애프터서비스 같은 부가비용 등에 주목한다고 한다.
자동차 구매 시 지역별 소비자 취향의 차이는 기후, 지형 등 자연지리 조건과 해당 지역 특유의 역사와 문화가 버무려져 나타난 결과라고 하겠다. 달리 말하면, 지역별로 특유한 소비관념과 소비문화가 존재하며, 그것이 특정 제품의 프리즘을 통해 소비패턴 차이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의 지역별 소비관념과 소비문화는 관찰자에 따라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얘기되고 있으나, 기본 맥락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표 1>은 그 중 한 예다.
예컨대, 자존심과 권위의식이 강한 베이징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브랜드와 애프터 서비스를 중시하며, 가격에 대한 고려도가 상하이나 광저우에 비하여 낮은 경향이 있다. 국제화 마인드를 갖춘 상하이 사람들은 국산품에 비해 수입 브랜드를 선호하며, 프리미엄과 세련된 미적 감각을 추구한다. 광저우 사람들은 가격 대비 성능을 꼼꼼하게 따지는 등 실용적인 소비 마인드가 강하며, 광고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높다. 한편 청뚜 사람들은 ‘인생은 즐기라고 있는 것’이라는 낙천적인 생활철학을 갖고 있으며, 소득 수준에 비해 지출이 과다한 편이다.
좀더 심층적인 가치관 차원에서 지역별 다양성을 추적한 연구 결과도 있다. 소비 동기로 ‘성취감’이 작용하는 강도는 내륙의 스촨, 충칭, 허베이(河北), 산시(山西), 샨시(陝西), 간쑤(甘肅) 등에서 높으며, 서부의 시짱(西藏), 칭하이(靑海), 닝샤(寧夏), 네이멍구(內蒙古), 신쟝(新疆) 등에서 가장 낮다고 한다. ‘인정(人情)’은 허베이, 산시, 샨시, 간쑤 등지에서 가장 강력한 동기로 작용했으며, 둥베이와 광둥, 상하이, 베이징 등 대도시 지역에서 낮았다. ‘체면(面子)’ 동기는 둥베이 지역에서 가장 강했으며, 광둥 사람들에게서 가장 약하게 나타났다. 이 연구 결과는 어느 지역을 타겟으로 할 것인지에 따라 광고나 프로모션의 키워드로 무엇을 선택해야 할 지를 귀띔해준다.
지역별 소득 및 씀씀이 격차
지역별 소비스타일을 단적인 수치로 나타내 주는 것이 소비성향인데, 이는 씀씀이가 얼마나 큰 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즉 소득에서 세금이나 각종 공제를 떼고 남은,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 중에 몇 %를 소비에 지출하느냐는 것이다.
2008년 현재 중국 31개 성의 평균 소비성향은 71.2이며, 표준편차는 4.2이다. 최고(광둥 78.7)와 최저(장쑤 64.1) 간의 차이는 14.6에 이른다. 한편 2000년 기준 한국의 16개 시도의 평균 소비성향은 2000년 현재 75.2이며, 표준편차는 3.3이다. 최고(제주도 82.1)와 최저(경상남도 70.2) 간의 차이는 11.9에 불과하다. 지역 기준과 비교 시기는 다르지만, 중국의 지역간 씀씀이 격차가 상당히 크다는 점을 짐작케 한다. 참고로 도시별로 나눠 보면 중국의 지역간 소비성향 격차는 더욱 크게 나타난다. 중국 109개 도시의 평균 소비성향은 2009년 12월 현재 70.2이며, 표준편차는 6.1이다. 최고(선양 88.6)과 최저(지닝 57.7) 간의 차이는 무려 30.9의 차이를 보인다.
소비의 원천이 되는 소득의 지역간 격차 역시 극심하다. 중국의 성별 일인당 지역내총생산(GRP)를 2005년 기준으로 비교분석해보면, 가장 높은 상하이(6,412달러)는 최저인 구이저우(624달러)의 10배 남짓이다. 한국의 지방자치단체별 1인당 GRP를 보면, 가장 높은 울산(4만32달러)은 최저 대구(1만1692달러)의 3.4배에 그친다.
(2) 지역별 비용 및 물가 격차
고객마다 가격이 다르다
베이징 시내 한복판 장안지에(長安街)에 있는 LG트윈타워 뒤편에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작은 식당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점심식사 값은 국수 5, 6위안, 볶음밥 7위안, 중국식 정식 10위안 정도. 수북이 담아주는데다 제법 맛도 있다. 단련 안 된 외국인은 배앓이를 각오해야 하지만……. LG트윈타워 내에도 식당이 열 서너곳 있다. 한식당에서 시켜먹는 국수나 된장찌개가 40위안 안팎이며, 중식당에서 딤섬으로 때우면 1인당 30원 안팎이 든다. 도보로 불과 1분 거리도 안 되는 거리에 점심 한 끼에 7, 8배 차이가 나는 식당이 나란히 놓여있다. 이처럼 동일 품목에 수많은 가격이 존재하는 곳이 중국이며, 그 가격의 다양성은 선택의 다양성을 의미한다. 극단의 소득 불균형 속에서도 중국이 원바오(溫飽) 단계는 이미 지났다고 자부하는 배경이 이런 건지도 모른다.
가격 스펙트럼이 가장 넓은 곳은 아마 트윈타워 건너편의 유명한 짝퉁 상가인 시우쉐이제(秀水街)일 것이다. 여기선 흥정하기에 따라 주인이 100위안 짜리라고 주장하는 가죽가방을 50위안에 살 수도 있고, 10위안에 살 수도 있다. 고객마다 그만의 가격이 있다고 보면 된다. 가격의 최대 결정요인은 매도자와 매수자의 눈치와 기세다.
이 같은 중국 가격의 속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들은 때때로 애꿎은 피해자가 된다. 일례로 한 한국 회사 주재원이 베이징 교외의 한 아파트 관리회사와 임대료 실랑이를 벌이다 벽에 부딛혔다. ‘월 1만5,000원에서 더는 깎아줄 수 없다’는 최후통첩을 받은 것. 2,000위안 깎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안하면서 계약을 체결했다. 한 달 후 같은 아파트의 똑같은 평형에 중국에서 10년 살았다는 다른 한국인이 이사를 왔다. 이 주재원은 새로 이사온 그 이웃한테 임대료를 물어보고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웃은 중국인 친구를 앞세워 임대료 협상을 벌인 결과 월 1만위안에 낙찰을 본 것. 중국에서 가격은 지역에 따라, 고객의 성깔에 따라, 심지어 고객의 국적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할 수 있다.
지역별 생활물가 및 임금 격차 극심
중국에서 택시비는 우리하고 비슷한 방식으로 계산된다. 일정 거리는 기본요금으로 가며, 그 이후부터 거리와 시간 병산제로 미터기가 올라간다. 각 지역 주요 도시들의 택시요금을 비교해보면 <표 2>와 같다. 기본요금은 우한이 3위안으로 가장 낮고, 상하이가 11위안으로 가장 높다. 낮 시간에 20㎞를 운행할 경우 허베이성의 타이위엔(太原)이 24위안으로 가장 싸고, 상하이가 그 2.6배인 62위안으로 가장 비싸다. 100리(40㎞)를 달릴 경우 역시 두 지역이 각각 가장 싸고 비싼 지역이 되는데, 그 차이는 3.3배에 달한다.
통신비나 교통비는 그나마 지역간 차이가 작은 항목이다. 주거비, 식비 등 지역별 차이가 큰 항목을 모두 포함한 생활비는 규모가 비슷비슷한 대도시 간에도 현격한 격차를 나타낸다.
물가 움직임에 있어서의 격차도 매우 크다. 중국의 36개 도시의 최근 3년간(2007년 6월~2010년 6월) 물가 상승률 격차를 조사해보면, 가장 낮은 샤먼(廈門) 6.8%과 시닝(西寧) 17.9% 간에는 약 3배 가량의 차이가 있다.
지역별 임금격차 역시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상하이와 장시(江西)성 간의 임금격차는 1992년 2배 수준에서 2009년 2.5년 수준으로 확대되고 있다. 폭스콘 사태의 여파로 올 들어 전국 각 지방정부가 앞다퉈 최저임금을 올렸지만, 그 와중에서도 지역별 최저임금 격차는 여전하다. 월간 최저임금 수준이 가장 높은 상하이의 최저임금 1200위안은 가장 임금이 낮은 닝샤(710위안)의 1.6배에 달한다.
입지전략을 다시 생각해본다
최근 중국에서 임금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생산비용 면에서 중국의 이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해외 생산기지로서 중국을 제치고 베트남이나 인도,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들이 부상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런데 생산기지에 대한 국가주의 접근, 즉 ‘중국이냐 베트남이냐, 아니면 인도냐’ 하는 식의 접근은 그릇된 판단을 낳기 쉽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중국은 지역별로 임금격차가 상당하며, 토지 가격, 임대료 등 생산비용 항목에 들어가는 기타 제반 물가에도 상당한 격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기술 전문직의 경우 지역간 임금격차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좁혀지고 있지만, 단순근로자의 경우 지역간 현격한 임금격차가 온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입지 선정을 둘러싼 고민은 ‘중국이냐 베트남이냐’는 문제틀 속에서는 결코 풀 수 없으며, 예를 들면, ‘난징이냐 하노이냐’ 또는 범위를 더욱 좁혀 ‘중관촌이냐 방갈로르냐’라는 차원에서 풀어가야 할 것이다. 즉 ‘중국이냐, 베트남이냐’라는 질문을 던져 먼저 중국으로 결론을 내리고 난 뒤, 다시 그렇다면 중국의 어디로 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식으로는 안 된다. 그보다는 갖가지 정보를 토대로 ‘난징이냐 하노이냐’ 하는 식으로 구체적인 지역 후보를 먼저 압축한 뒤 현지여건 정밀조사를 통해 확정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정보 및 통계의 이용 방식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국별 평균임금이나 중앙정부 정책 같은 국가 기본정보 및 통계는 현실의 입지 선정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 대신 지역별 해당직종 임금, 지방정부의 조례나 판례 같은 것들이 실질적인 정보가 된다. 특히 중국처럼 경제활동, 특히 정부투자를 지방정부가 책임지고 실행해 나가는 시스템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중국에서 법령은 중앙정부가 제정하지만, 그것을 해석하여 실행하는 것은 지방정부이다. 이를테면, 중앙정부가 ‘다가구 보유자의 주택 추가구입을 억제한다’는 식으로 중앙정부가 정책을 내놓으면, 어떤 지방정부는 2가구 이상 보유자의 추가 주택구매를 금지하고, 어떤 지방정부는 3가구 이상에 대해서만 적용하고, 또 어떤 지방정부는 아예 정책 집행을 차일피일 미루기도 한다. 법은 같지만 적용 여부와 방법이 제각각인 것이다.
(3) 지역별 비즈니스 스타일의 차이
중국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해온 외국 기업가들의 관철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비즈니스 협상 스타일 역시 지역마다 다르다고 한다.
북방인들의 경우 개념과 가치, 원칙을 중시한다. 먼저 협상 서두를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는 이런 점, 저런 점에서 협력하겠소. 우리는 여기에 협력하기 위해 왔고, 당신에게 어떤 손해를 끼치지 않을 거요. 앞으로 장기간 함께 일해보지 않겠소?’ 여기에 흔쾌하게 ‘YES’ 해야만 비로소 본론으로 들어간다. 본론의 전개방식도 큼직큼직한 요점, 또는 공동의 목표들을 확인하며 짚어가는 방식이다. 몇 개 안 되는 이 요점들에 대해서 미친듯이 다투지만 세부사항에 대해선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들에게 자세한 수치를 제시하거나, 가격 문제를 꼬치꼬치 따진다면 멍청이 취급을 당한다. 이들은 상대방이 자신을 존중하고 위엄을 세워주기를 바란다.
한편, 상하이와 화동지역 기업인들은 ‘거친 협상가들’로, 독할 정도로 세부사항에 집착한다. 협상은 매우 구체적이고 직설적이어야 한다. 아이디어를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하지 못하면 그리 심각한 반응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협상은 대개 이전투구가 되고, 쾌속으로 진행되며, ‘공격이 최상의 방어’인 듯한 거친 상황의 연속이다. 만약 상대방 제안을 별 이의없이 받아들인다면, 그들은 속으로 바보라고 비웃을 것이다. 다행인 것은 대체로 한 번 계약을 체결하면, 다른 지역과는 매우 다르게, 정말로 그 계약이 지켜진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남방 중국인들은 계약을 어기고 잘못된 정보를 주는 등 가장 일하기 어려운 상대로 여겨진다. 매우 수치 지향적이며, 진정한 의미의 장사꾼들처럼 군다고 한다.
한편 미개발된 내륙지역에서는 기대수준을 낮추어야 의미있는 사업협상을 할 수 있다. 이들은 상대방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정작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중국측이 정말로 계약의 조건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꼭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4) 세대별 마인드셋과 소비패턴 차이
10년 간격으로 나뉘는 중국의 세대구분
‘70後’는 회사에 목숨을 거는 일벌레, ‘80後’는 ‘야근 사절’, 그러면 ‘90後’는? ‘출근 사절’! ‘70後’는 예금계좌가 있고, ‘80後’는 빚이 있다, 그러면 ‘90後’는? ‘내겐 할아버지가 있다’!
중국 인터넷에 나오는 촌철살인의 우스개다. 불과 30년이라는 시간 안에 마인드셋과 행태가 서로 너무나 다른 세 개의 세대가 들어 있는 것이다.
중국의 세대는 대체로 생년을 기준으로 10년 간격으로 구분된다. 70년대에 태어났으면 ‘70後’, 80년대에 태어났으면 ‘80後’, 이런 식이다. 10년 간격으로 구분되다 보니, 다른 나라들보다 세대가 훨씬 잘게 나눠진다(<그림 2> 참조). 중국의 경제 발전과 사회 현대화가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빠른 속도로 이루어져왔음을 감안하면 어쩌면 당연하다.
중국의 사회인들(20대~50대)은 마오시대의 공산주의 독재부터 현재의 사회주의적 시장경제의 풍요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청소년기를 돌아다 보면, 이들이 왜 각각 다른 세대로 분류되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50後 세대는 끔찍한 문화대혁명의 혼란 속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잃어버린 세대’, ‘상처받은 영혼 세대’이다. 60後, 70後 세대는 문혁 이후의 혼란기 속에서 제대로 공부할 기회를 잃고, 점수경쟁과 취업난에 시달렸던 세대이다. 80후 세대는 개혁개방의 혜택을 고스란히 받는 행운을 타고난 세대이며, 90후 세대는 1자녀 정책의 산물로서, 선진국 수준의 풍요를 누리고 자라나는 세대이다.
세대별 직장생활과 소비패턴 차이
글로벌 기업 인사 담당자들에 따르면 60후 이전세대에선 회피와 책임감 부족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나는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다. 내 윗사람이 결정을 내릴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서슬퍼런 문화혁명기가 이 세대에 남긴 상흔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자질 있는 중간관리자층’ 부족 문제를 늘 호소하는 게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70후 세대는 대체로 안정적인 교육을 받고 시장경제에서 상당한 경험도 쌓았다. 따라서 잘만 육성하면 어느정도 제몫을 해낼 수 있다. 80후 세대는 개방성과 서구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좋아 동기부여가 잘 되면 열심히 일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개인적인 성향이 강하고, 로열티가 낮은 경향이 있다.
세대차는 소비행태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70후와 80후의 가전소비 행태 차이를 분석한 한 연구에 따르면, 70후 세대는 호화로움, 품격 등을 추구하는 반면, 80후 세대는 나만의 개성, 유행 등을 추구한다. 가격에 대해서는 70후가 80후보다 훨씬 민감하다. 맘에 들지만 가격이 생각보다 높을 경우 80후는 일단 구매하지만, 70후는 결국 사지 않는 쪽을 택한다. 70후는 제품 선택 시 다른 가족 구성원들, 특히 부모의 사용을 염두에 두지만 80후는 자신과 배우자만을 고려한다.
요즘 80후 세대와 90후 세대 중 독자(獨子)들을 일컫는 ‘독자세대’의 소비행태가 각별한 주목을 끌고 있다. 향후 소비시장의 주류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제 막 가정을 이루기 시작한 1세대 독자세대들은 양가 부모 4명의 경제적 원조를 받아 자신들의 수입능력을 뛰어넘는 소비를 하고 있다. 최근 2~3년간 부동산, 자동차시장이 활황세를 보인 것은 이들이 본격적인 소비시장 주류로 부상한 것과 관련이 있다. 작년에 상하이에서 이뤄진 한 조사에 따르면 20~35세 젊은층이 부모 자산으로 자동차를 구입한 비율이 전체의 45%가 되었다고 한다. 머지않아 1세대 독자세대들의 결합으로 등장하게 될 2세대 독자세대들은 부모와 친가 및 외가 조부모 등 6명의 지원을 받아 소비생활을 하게 되어 향후 중국 내수시장 급성장에 견인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3. 중국은 결코 평평하지 않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중국은 결코 ‘평평하지 않다’. 소비패턴과 소비자 마인드셋 면에서 지역간 차이가 크며, 구매력 격차가 상당히 크다. 하이얼의 카사르테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 어느 지역에서나 두루 환영받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치밀한 사전조사와 제품설계가 필요하다. 팔방미인형 제품을 만들어낼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타깃 소비자를 정확히 겨냥한 전략적인 제품에 승부를 거는 것이 낫다.
세대간 마인드셋과 소비행태에서의 차이 역시 다른 어느 나라 시장에서보다 크다. 게다가 세대가 잘게 나뉘다 보니, 세대간 시장주도권 이전 속도가 매우 빠르다. 전(前) 세대에 비해 훨씬 폭발적인 잠재력을 갖고 있는 90후 세대가 점차 시장 주도권을 넘겨받게 될 향후 10년간이 글로벌 기업의 시장대응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본문에서 따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계층별 소득격차도 극심한 상황이다. 문제는 계층별 소득격차의 전개 방향인데, 극단적인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는지, 아니면 중산층화가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 관심이 높다. 양극화가 주도적인 흐름이라면 상류층을 겨냥한 프리미엄 마케팅 전략의 성공 가능성이 높고, 중산층화가 진행된다면 매스티지 전략에 힘을 실을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첫째, 유감스럽게도 중국의 계층구조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믿을만한 공식 및 비공식 데이터가 없으며, 둘째, 소득 불평등 구조 변화의 방향이 어떠한지와 무관하게 전 계층의 구매력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이를 감안할 때, 뭐는 맞고 뭐는 틀리다고 다투는 것은 의미가 없다. 구매력 있는 상류층 시장이든, 성장 속도가 빠른 중산서민층 시장이든 간에 소비자들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여 1등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시장은 많고, 비즈니스 성공의 열쇠는 시장별로 다르다.
지역간 다양성에 주목할 때, 비즈니스나 시장 관점에서는 중국을 또 하나의 EU로 간주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즉, 중국 시장을 동질적인 시장이 여럿 모여있는 하나의 국가경제로서가 아니라 다양한 구조적 특성과 발전경로를 갖고 있는 이질적인 시장들의 조합으로 보자는 것이다. 중국은 기후, 지형, 언어, 민족 등 자연지리 및 인문지리 측면에서 EU에 버금가는 다양성과 차이를 갖고 있다. 소득 분포 면에서도 EU 만큼의 격차를 내부에 안고 있다. 나아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역할분담 측면에서도 공통의 정책 규약을 준수한다는 조건 하에서 회원국들이 재량적으로 재정정책을 수행하는 EU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표 3> 참조).
‘쓸만한 돈이 있다’는 것이 ‘돈을 쓸 준비가 됐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양성과 차이, 격차를 잘 이해하고 그것을 잘 활용해야 중국인들의 호주머니를 열 수 있다. 경쟁이 치열한 1선도시의 포화된 시장에서 내내 머물러 있는 것도 문제지만, 2,3선 도시가 뜬다고 진입을 서두르는 것도 꼭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물론, 구매패턴과 소비자 취향이 같다면, 똑같은 마케팅 전략을 급부상하는 유망시장에 적용해 선점효과를 거둘 수가 있다. 하지만 중국 각 지역 시장은, 특히 내륙에 깊이 들어갈수록 소비자들의 구매력이나 구매패턴, 취향 등이 서로 다르다. 너무 성급히 낯선 시장에 진입했다가는 자칫 초기 유통망 구축과 브랜드 마케팅에 돈만 낭비하고 효과는 보지 못할 수가 있다. 간신히 돈의 힘으로 브랜드를 구축했다고 해도, 로컬 후발주자의 캐치업 속도와 중국 소비자들의 낮은 로열티를 감안할 때, 결코 안심할 수도 없다. 결국 승부는 실력과 장악력에서 난다. 자기 제품에 대한 자신감과 시장을 정확히 보는 눈을 바탕으로 제한된 마케팅 역량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최선이다. 무기를 얼마나 정확하게 겨누었느냐가 얼마나 총을 빨리 빼들었느냐보다 중요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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