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은 한강 이남을 뜻하는 단어였으나 본래의 뜻이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오늘날 강남은 마치 하나의 특별시를 연상시킬 정도로 특별한 사회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대한민국 교육과 부동산 1번지, 최신 유행의 근원지이고 돈과 권력, 사치와 소비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강남과 강남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
한국 사회의 새로운 '파워 엘리트'로 자리잡은 강남 사람들은 우리사회에서 늘 관심사가 된다. 강남은 '8학군'으로 대표되는 교육열풍의 중심지이며 돈과 권력, 사치와 소비의 대명사처럼 불린다. <대한민국 강남특별시>에서 저자는 인터뷰와 취재를 통해 강남 부자들의 풍속도를 조사했다.
자녀가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할 때가 되면 식장으로 리츠칼튼이나 메리어트호텔을 찾는다. 한때는 전문 예식장들이 득세했으나 요즘은 이 두 호텔 결혼식장을 최고로 인정한다. 주차가 편리한데다 부대시설이 많아 여러모로 편리하기 때문이다. 예식 비용이 수천만 원대에 이르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나이가 들어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면 우선 찾는 곳이 헬스클럽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강남 최상류층이 운동을 할 때 최고로 인정하는 곳은 메리어트호텔 마르퀴스와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헬스클럽이다. 메리어트 마르퀴스의 경우 회원권이 개인은 4천만 원, 부부는 6천만 원이나 하는데도 구하기가 힘들 정도다.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역시 회원권 가격 면에서 최고를 기록할 만큼 돋보인다. 개인은 5천만 원, 부부는 7천5백50만 원으로 국내 최고 수준이다. 헬스클럽 출입증 가격이 고급 자동차 한 대 값과 맞먹는다. 하지만 회원권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통계에 따르면 연봉 1억원 이상 소득자의 절반 정도가 강남에 산다. 고급빌라나 아파트에 살면서 고급 외제 승용차를 타는 3만 명 가운데 1만400명이(34.7%)이 강남에 거주하고 있다.
강남 부유층은 백화점 매장에서 오래 쇼핑을 하지 않는다. 백화점이나 명품업체가 보내준 카탈로그에서 미리 상품을 골라두기 때문이다. 그들이 구매를 할 때 현금을 선호하는 이유는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쇼핑내역이나 자금 사용내역이 모두 공개되므로 사용을 꺼린다. 특히 1000만원 이상 구매할 때는 수표나 현금으로 결제한다고 한다. 그래서 거액의 돈을 즉시 셀 수 있도록 현금 세는 기계를 비치해두는 매장도 있다. 각 매장이 VIP로 관리하는 특별회원의 경우 젊은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한다.
강남 도곡동의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삼성 타워팰리스가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로또에 당첨되면 대치동에 있는 타워팰리스로 이사해야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특별한 생활'을 보장한다는 초호화 공동주택에 사는 신흥 상류층의 삶의 방식에 대한 관심도 크다.
타워팰리스에 비해 강남의 터줏대감격인 대치동 우성아파트, 선경아파트, 미도아파트는 20년이나 된 오랜 건물이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의사, 변호사, 대기업체 임원, 사업가, 고위 공무원 등으로 재산은 몰라도 사회적 위치 등을 고려하면 타워팰리스 주민들에게 전혀 뒤질 것이 없다. 그리고 강남 최고의 명문 초등학교인 대치초등학교에 아이를 진학시키려면 타워팰리스가 아니라 우성, 선경아파트 등에 거주해야 하기 때문에 젊은층은 타워팰리스로 옮기지 않는다.
2003년 9월 모 신문에는 택시운전을 한다는 한 강남 주부의 사연이 실렸다. 주인공은 40대 후반의 여성으로 강남에 사는데다 남편 직업이 은행 중견간부라는 사실이 독자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기사가 나간 후 해당 신문사에는 사실이냐고 묻는 전화가 이어졌다. 또 인터넷 게시판에는 그렇게까지 해서 아이들 과외를 시켜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네티즌들의 비판적인 의견이 많이 올라왔다. 그렇다면 이 주부가 택시운전이라는 험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두 아이의 과외비 때문이었다. 고2와 중3인 두 자녀의 한 달 과외비가 3백만 원 가까이 되자 남편이 집으로 가져오는 월급(평균 4백만 원)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3개 명문대를 합치면 강남구가 100명 중 9명, 서초구가 7.7명으로 가장 많고, 더욱이 그 비중이 높다. 연간 1인당 평균 사교육비도 강남지역이 478만 원으로 가장 많다. 강남에 산다고 해서 사교육비 부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강남에 사는 한 주부는 한 달에 120만원이나 들어가는 초등학생인 두 아이의 학원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대리운전 일을 하게 됐다고 한다. 대리운전은 서울 강남지역 주부들 사이에서 소위 "뜨는" 아르바이트다.
강남 부자들은 사위나 며느리도 강남 출신이기를 원한다. 직업이나 학력보다는 집안의 재력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배우자감으로는 변호사나 의사 등 `사`자 직업과 아울러 유명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돈을 많이 번다면 자영업자를 더 선호한다. 미리 사돈집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준비하기 때문에 혼수문제로 분란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결혼식은 조용히 진행한다. 혼수비용은 신혼집까지 마련하는 경우 10억원을 훌쩍 넘기기도 하지만 보통 예단비용 등으로 2억~3억원 정도를 지출한다.
강남 사람들은 자신을 위한 투자, 즉 운동이나 여행을 할 때에는 아낌없이 돈을 쓴다. 그러나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데에는 돈을 쓰지 않는다. 친구에게 한턱 내거나 하는 일도 없으며 자선에도 인색하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2003년 불우이웃돕기 성금모금 실적에서 성북구는 2억8785만원으로 1위에 오른 반면 서초구는 2400만원에 불과해 25개구 중 22위에 불과했다. 2002년에는 서울에서 최하위였다고 한다.
강남의 아파트 단지 게시판에는 "우리 아파트는 평당 ○○원 이하에는 내놓지 맙시다"와 같은 게시물을 발견할 수 있다. 부녀회가 앞장서 아파트가격에 대해 주민 및 중개업소, 부동산 정보업체 등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이에 따를 것을 요구하며 집값을 관리한다. 서울 강남의 일부 고교에서는 연예인 등을 부르는 데 필요한 비용을 인근 사설 학원 등에서 협찬받아 충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남녀노소 불문하고 이재에 밝은 편이다.
전국에서 재테크 관련 책이 가장 많이 팔리는 곳이 어디일까? 대체로 수입이 적어 돈을 모으고자 하는 저소득층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작년 한 해 부자 열풍이 전국을 휩쓸 때, 지역별 독자층 분석이 가능한 인터넷 서점 관계자들의 실사에 의하면 이들 재테크 서적이 가장 많이 팔린 지역이 대한민국 최고 부자 동네 강남, 서초, 송파 등이었다. 강남 사람들의 돈에 대한 관심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최고였다. 돈을 벌어들이는 것에도 악착같고 씀씀이도 상당히 합리적이었다.
사실 일부 고위층이나 투기 세력을 제외하고는 현재 강남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러나 강남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강력 범죄가 늘어나자 강남 사람들이 몸으로 느끼는 위기의식은 극에 달한 듯하다. 이제 강남에 산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졸부'로 취급받거나 범죄의 표적이 되어서는 안 되며 소문만 무성했던 강남의 실체를 제대로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