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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떻게 탄생했나? <옮겨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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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떻게 탄생했나? <옮겨온 글>|홍성근강사<음악,영화>
2009.12.30 22:43|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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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석(ja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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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탄생

참 많고 많은 철학이 있다. 옆집 아저씨의 인생철학이 있으며, 사장님의 경영 철학이 있고, 철학관을 운영하는 점쟁이의 신묘한 철학도 있다. 또 우리는 흔히 “저 사람은 철학적인데”라고 말하며 심오한 표정을 짓는 어떤 이를 곁눈질하기도 하며, 또는 “오! 이건 철학적인 시잖아!” 라며 알 수 없는 어떤 언어의 폭죽 앞에서 감탄하기도 한다. 사정이 이 정도라면 철학이란 것은 그 안에 모든 종류의 물고기가 들어가서 노는 거대한 수족관과도 같은 지경이다. “저요! 저요!” 물고기들이 서로 자신이 철학임을 자처하지만 이 와중에 철학이란 말의 의미는 수족관에 빠뜨린 결혼 반지처럼 물 속 어디론가 안타깝게 사라져 버리고 만다. 대체 철학이 뭐기에?

 

 

 

 


사람들은 일상적인 차원에서 심오한 사유, 진지한 사유 등을 가리키기 위해 대체로 별 주의없이 철학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모든 용어가 그렇게 거칠고 두루뭉술하게 사용되면서 세공되는 법이다.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아도에 따르면 소크라테스가 대화를 나누던 시기만 해도 철학이란 그저 ‘일반적 교양’을 가리키는 말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인류가 철학이란 말의 껍질 안에 수천 년 동안 어떤 환약(丸藥)을 고심해서 농축시켰는지 그 근본을 알기 위해선 이 말의 크기를 한껏 좁혀볼 필요가 있다. 철학은 그리스인들의 품 안에서 시작되었는데 이 기적이 일어나기 위해 필요했던 여러 가지 가운데 하나가 그리스의 지리적 특성이다. 에게해 같은 바다에서 섬들은 항해자의 시계에서 사라지는 법이 없기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안전한 욕조에 작은 배들을 띄워놓듯이 느긋하게 어디로든 항해할 수 있었다.

 

주로 첨단 문명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렸던 아시아와 이집트로 말이다. 그리스의 바다는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라 불리는 지브롤터 해협 건너편에 펼쳐진 대서양의 무서운 광대함을 가지고서 항해자들을 위협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따스한 욕조에 발을 담그고 종이배를 무릎 사이로 띄워놓고 노는 어린이처럼 자유롭게 이집트로부터 종교를 배우고(역사학의 아버지 헤로도토스의 주장), 기하학을 배에 실어왔으며 바빌로니아로부터 천문학을 수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철학적 사유의 바탕이 되는 이 모든 지적 자원(종교, 기하학, 천문학 등등)이 동방의 제국과는 다른 구도 위에 놓였다는 것, 즉 전제군주의 지배 아래 놓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왜 유독 그리스만 전제군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행운을 누렸는가? “그리스는 반도의 각 지점이 바다와 인접해 있고 해안들의 길이가 상당해서, 일종의 분열 가능한 구조를 지니고 있는 듯하다”라고 철학자 들뢰즈는 그리스의 지형을 설명한다. 이 문장에서 핵심적인 표현은 물론 ‘분열 가능한 구조’다.


 


 


 

그리스 반도에 대한 이 묘사는 기원전 800년경부터 도시들이 건설되었으며, 기원전 600년경에는 소위 최초의 철학자라는 탈레스가 등장한 소아시아의 이오니아에 대해서도 타당하다. 이오니아는 150킬로미터나 되는 긴 띠 모양의 지역인데 역시 집중화가 아니라 분열이 용이한 구조인 것이다.

 

이 분열되기 쉬운 구조는 그리스인들이 전제군주의 제국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불행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그리스인들은 동방의 제국으로부터 충분히 가깝고도 멀었다. 가까이서 동방의 학문들을 흡수했으나 제국에 복속되는 대신 바다와 섬으로 분열되어 나갔다. 그리스는 제국의 높은 성벽 옆에 상인들이 오가며 천막을 치고 자유롭게 거래하는 장터 같은 곳이었다. 그렇다면 그리스란 고대의 인터넷이라 해도 좋지 않겠는가? 어디서든 지식을 흡수하고 어디서든 거래가 이루어지지만, 중심도 없고, 전제군주의 일방적인 법령을 따르지도 않는다. 그저 에게해를 무대로 한 웹서퍼들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스라는 이 장터의 법칙은 거래를 위한 대화 또는 대화를 통한 상호간의 관심사의 조절이지, 결코 전제군주적인 ‘지배와 예속’이 아니다. 거래와 대화는 무엇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가? 제사장은 자신만이 독점적으로 받은 신탁에 의존하며, 전제군주는 독점적으로 이어받은 혈통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제사장이나 전제군주와 대면하는 방식은 독점적 권위에 대한 ‘복종’ 외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독점적 권위도 지니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이 장터에서 만나 거래와 대화를 시작할 때는 그들은 양자에게 공통적인 바탕 위에서만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가지고 있고 너도 가지고 있으며, 그러므로 서로 말을 통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바로 ‘로고스’가 그것이다. 이 심오한 용어를 우리는 오늘날 ‘이성’이라 번역하기도 한다. 그리스라는, 평범한 사람들이 오가는 국제 시장은 사람들이 권위를 통해 복종하는 방식 말고 이성을 통해 서로 만날 수 있는 방식을 탄생시켰다.

  



이 이성을 후에 데카르트는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 분배된 것”이라 불렀다. 잠깐 지나가면서 이야기 하자면 이런 공평한 바탕만을 인정하고 이루어지는 사람들의 교류란 그리스인들의 위대한 정치 형태인 민주주의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성이라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바탕에서 자라나는 것이라는 점에서 숙명적으로 철학은 민주주의와 한 배에서 나온 형제다.

 

요컨대 그리스인들의 발명품이란 ‘공통된 바탕’인 ‘이성’ 위에 서서 ‘자유롭게’ ‘소통’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철학함’의 근본적 형태를 결정한다. 그리스인들 이래로 철학하는 사람은 늘 자기 안에 있는 이성과 대화하든, 다른 이의 마음 속에 깃들어 있는 이성과 대화하든 어떤 경우에나 만인에게 공통된 이성이 인도하는 것 이상을 쫓으려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성을 늘 가장 ‘자유롭게’ 놓아두려고 하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왜 그리스 정신 최고의 유산인 플라톤의 철학이 ‘대화록’이라는 형태로 표현되었는지 역시 이해할 수 있다. 나와 상대방에게 보편적으로 깃들어 있는 로고스를 바탕으로 서로 평등하게 소통하는 그리스의 정신은, 대화 자체를 통해 정신이 전개되어 나가는 방식을 생생하게 중계하는 ‘대화록’이라는 글쓰기의 형식만을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옷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공통적 이성에 기반을 둔 소통을 통해 그리스인들은 지혜(소피아)에 도달하고자 했다. 그런데 이 사실이 숨기고 있는 바는 철학자란 ‘지혜’를 아직 가지지 못한 자라는 것이다. 보통 가장 지혜롭다고 알려진 철학자가 실은 지혜를 가지지 못한 자라니! 가령 소크라테스는 늘 자신을 가리켜 “지혜에 관한 한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님을 아는 자”라고 일컫기 좋아했다. 철학하는 자들이란 다만 “지혜(소피아)를 좋아하는 일(필로스)”을 하는 자이고 이 일을 후에 사람들은 ‘필로소페인(철학하다)’이란 명칭으로 고착시켰다.

 

지혜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바로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욕망하는 일, 즉 지혜를 사랑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전제 군주와 제사장과 현자들은 신과 같은 특별한 원천으로부터 부여받은 지혜를 애초에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과는 대화하거나 토론할 수 없으며, 오직 그들의 가르침과 명령에 복종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철학자는 지혜는 없고 지혜를 사랑할 뿐이며,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남들도 다 가지고 있는 이성 밖에는 없는 가난한 자들이다. 따라서 철학자들은 복종해야 할 권위를 가지는 대신에 보편적인 이성을 공유하는 ‘친구들’을 가진다.


 



 

그리스인들에게 지혜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법이 없으며, 지혜에 접근하기 위해선 자신이 가진 유일한 생각함의 도구인 이성이 ‘일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성은 모든 사람이 나누어 가진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성은 자신이 지혜에 대해 생각한 것이 정말 이성의 본성인 ‘보편성’에 위배되지 않는지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깃든 이성에게 묻고 교정 받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성이 노동하는 방식으로서의 ‘대화’이다. 그러니 당연스럽게도 철학은 ‘의견’을 내놓고, 그 의견을 교정하기 위해 논쟁을 하고, 교정된 보다 나은 의견을 다시 내놓는 그런 생각함의 과정을 가지는 것이다.

 

이렇게 철학은 ‘의견’을 지닌 자들의 전쟁터다. 옆집 아저씨의 인생철학도, 사장님의 경영 철학도, 철학관을 운영하는 점쟁이의 신묘한 철학도 혼자 방안에 있을 땐 철학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몽상이며 “이거 맞지? 이거 맞는 얘기잖아!”라고 다짜고짜 옆 사람에게 강요될 때는 사람을 피곤케 하는 독선과 폭력이 된다. 그러나 개인들이 가진 그런 다양한 생각들이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이성의 전쟁터 위에서 생존을 시험받게 될 때 그것들은 이미 철학의 반지를 손에 넣기 위한 모험의 도상에 서 있는 것이다. 용기를 가지고 철학이라는 붉은 알약을 목구멍으로 넘긴 이는 독선과 망상이라는 정신이 앓는 병으로부터 치유되기 시작한다. 설령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논리적이며 가치 있는 생각인지 시험받다가 파멸하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저 산뜻한 치유 효과를 만들어 내는 철학이라는 절대반지에 대한 유혹을 인류는 떨쳐버리지 못하리라.


 

 


그런데 대화 속에서 교정 중인 또는 치료중인 ‘의견들’은 언제 ‘지혜’가 될 수 있을 것인가?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의 공동체라기보다는 지혜에 대해 공통적 흥미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의 공동체는 저 무한한 대화를 끝낼 날이 있을 것인가? 그래서 이 철학함의 형태에 염증을 느낀 인류는 시(詩)로, 종교로, 정치적 실천으로 종종 빠져나가 지혜에 접근하는 새로운 길을 모색해보기도 한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곁길들이 인류의 정신을 철학의 피로함으로부터 구출해 보다 싱싱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서동욱 / 서강대 철학과 교수
벨기에 루뱅대학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있으며 [일상의 모험―태어나 먹고 자고 말하고 연애하며, 죽는 것들의 구원], [들뢰즈의 철학―사상과 그 원천], [차이와 타자―현대 철학과 비표상적 사유의 모험] 등의 저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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