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인제군 백담마을 주민들이 지난달 17일 마을 내 발효장에 모여 지역 특산물인 마가목 열매가 담긴 병을 들어보이고 있다. | 홍도은 기자 |
▲ 시골 마을에 젊은이도 돌아와 ‘함께 잘살자’ 신바람
마을기업이 지역 네트워크 역할, 공동마케팅도 진행
“일하는 재미에 푹 빠져”… 마을버스 사업도 쾌속운행
■“마을기업 덕분에 취직도 하고 행복해요”
지난해 2월 문을 연 백담마을기업 특산물 판매장은 165㎡(53평) 규모이다. 황태포·통황태·황태채 등 황태 가공품과 마가목 열매·효소 등을 판매한다. 마가목은 장미과에 속하는 나무로 열매·잎·나무껍질 등이 약용으로 쓰인다. 용대2리 주민들은 15년 전 마을에 마가목을 심기 시작했다. 용대2리는 기후가 마가목이 자라기 좋다고 한다. 매년 가을엔 마가목 축제도 연다. 판매장에서 총무·회계 등 운영을 담당하는 신덕환 백담마을기업 사무장(29)은 “원래 용대리는 황태로 유명했다”며 “그런데 최근 마가목이 기관지와 천식에 좋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홍보가 많이 돼 황태 못지않게 많이 팔린다”고 전했다. 마가목 판매 초기에는 월 판매량이 1~2봉지였으나 지난해 가을에는 월 40봉지로 늘었다. 말린 마가목 열매도 300g씩 포장해 판매하고 있다.
신씨는 백담마을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불과 2년 전만 해도 마을에서 살면서 마을기업에 다닐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지방대에서 소방방제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 졸업 후 인천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엔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내 쇼핑몰에 취직해 옷을 판매했다. 매일 12시간씩 일했지만 월 100만원밖에 받지 못했다. 그는 “쇼핑몰에서 일을 배워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려 했지만 쇼핑몰이 한 달에 수백개씩 생기고 사라지는 현실을 알게 된 뒤 그 생각이 쏙 들어갔다”며 “장사가 잘된다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건 상위 1%의 쇼핑몰뿐이었다”고 말했다.
쇼핑몰 일을 그만둔 뒤 김포에 있는 주물공장에 취직했다. 1년간 인천에서 통근했고, 그 뒤 1년 동안은 공장 옆 사무실을 개조한 곳에서 자취했다.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7시까지 일해야 했다. 그는 “오전 7시 출근이라 아침 6시30분에 일어나 비몽사몽간에 밥을 먹고 출근하고, 퇴근하면 잠자기 바빴다”며 “하루 종일 10~15㎏ 무게의 거푸집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느라 언제나 몸이 녹초가 됐다”고 말했다.
2011년 초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황태 중간 가공사업을 할 생각이었다. “월급쟁이는 일을 잘하든 그렇지 않든 다 똑같은 것 같았다. 내 것,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귀향 후 가공 사업 정보를 수집하던 중 마을기업이 생겼다. 마을기업에서는 판매장을 운영할 사무장을 모집하고 있었다. 그는 “사업 경험이나 쌓자는 생각에서 지원했다”고 말했다.
신씨는 마을기업에서 일하게 된 것을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했다. 그는 “다른 일을 할 때는 일하는 것이 싫었다. 생산직은 나한테 할당된 분량만 일하면 월급이 따박따박 나왔다. 주말에 일하는 것도 싫었다”고 말했다. 주말에 일터가 아닌 나이트클럽에 가서 놀고 싶었지만 이제는 밤을 새우면서까지 일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마을기업이 내 것은 아니지만 운영을 하는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일하는 분들이 조금 더 쉽고 편하게 일할 수 있을까’ 등을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신씨는 백담마을기업과 용대향토기업이 사회적 경제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반 사기업이 용대리에서 이 두 마을기업과 유사한 사업을 할 경우에도 마을 주민을 고용하고 급여를 제공하겠지만 주주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고용과 급여를 최소화하려 할 것이라고 신씨는 말했다. 그러나 마을기업은 주민들이 주주이기 때문에 가급적 최대의 고용과 급여를 유지할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 경제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신씨는 마을기업이 마을 간 네트워킹과 상호 발전의 접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용대리 인근의 진동1리, 가리산리에도 마을기업이 설립돼 있으므로 이들 기업이 서로 협력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진동1리 마을기업은 산나물을 재배하고 있지만 관광객 등 이를 구매할 소비자들의 발길이 없다. 하지만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기간에 일정한 수수료를 내고 용대리 마을기업 판매장에서 팔 수 있다. 용대리와 진동1리 모두 이익을 거두는 공생관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마을이 잘살면 면이 잘살고, 면이 잘살면 군이 잘살고, 군이 잘살면 도가 잘사는 것 아니겠느냐”며 “결국 마을기업은 강원도 전체가 잘살 수 있는 기틀이 된다”고 말했다. 인제군의 마을기업들은 한 달에 한 번씩 공동마케팅 등을 위한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그의 삶은 본질적으로 변했다. 마을기업, 사회적 경제가 가져다준 변화다. 우선 도시에서 자취 생활을 하던 때와 달리 부모와 함께 집에서 생활하다보니 먹는 것이 달라졌다. 신씨는 “늦은 시각에 불이 꺼진 집에 들어가 밥을 차려 먹고 있으면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식사라고는 밥이랑 참치 통조림, 3분 요리가 전부였지만 요즘은 내가 좋아하는 청국장을 자주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백담마을로 돌아와 몸무게가 5㎏ 늘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가족 간 유대 강화와 이에 따른 심리적 안정감이다. 그는 “타지에서 생활할 때는 어머니가 아파도 마음대로 오지 못했는데 지금은 ‘엄마, 같이 병원 가자’고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150만원가량의 월급을 받는 그는 적금을 제외한 급여의 대부분을 어머니에게 드린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신씨는 도시에서 일할 때 여가생활이라고는 한 달에 한 번 서울로 가서 친구와 저녁을 먹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백담마을에서는 자주 여가를 즐긴다. 신씨는 한 달에 한 번 이상 가족과 함께 속초에 가서 외식, 영화 관람 등을 즐긴다. 그는 “지난달 태어나 처음으로 어머니와 함께 부산으로 여행을 갔는데 어머니가 굉장히 좋아하셨다.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와 영화 보고 밥먹는 것이 소소한 행복 아닐까”라며 미소를 지었다.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 주민들이 설립, 운영 중인 백담마을기업 지역 판매장에서 직원이 황태채를 포장하고 있다. | 홍도은 기자 |
■ 용대향토기업과 또 하나의 마을기업 예고
용대향토기업에서 백담사와 마을을 오가는 버스를 11년째 운행하는 유성종씨(41)는 백담사 왕복버스를 운전하기 전에는 화물차를 몰았다. 그는 가족과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는 화물차 운전을 그만두고 다른 직업을 갖기 위해 2년 동안 당구장, 포장마차 등 사업에 도전했다. 그러나 여러 차례 실패의 쓴맛을 봤다. 그러던 차에 용대향토기업에 취직할 수 있었다. 그는 “외지에서 일할 때보다 급여가 많지는 않지만 내가 태어난 곳에서 일하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용대향토기업은 눈이 오는 12월부터 2월까지는 버스 운행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기간에도 유씨는 급여를 받는다. 영리 추구가 목적이 아닌 주민을 위한 마을기업이기 때문이다. 수당을 뺀 실수령액만 180만원이다. 여름, 가을 등 성수기 때는 시간외수당을 포함해 230만원대의 월급을 받는다. 그는 “화물차를 운전할 때는 일주일에 2~3일씩 집을 비우고 했는데 마을에서 일하니 가족들과 지내는 시간이 늘어 아내가 든든해한다”고 말했다.
백담마을은 또 하나의 마을기업을 준비 중이다. 저소득층·60세 이상 고령층이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지난해 판매장 옆에 황태, 마가목 등을 가공하는 가공장을 만들었다. 정 이장은 “마을기업의 주목적은 고용 창출”이라며 “다음달에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신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선정돼 정부로부터 임금 등을 지원받으면 15명 안팎을 채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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