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삼성은 내년도 우리 경제성장률을 3.6%로 전망했다. 잠재성장률에 못 미칠 뿐 아니라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때를 제외하면 가장 낮은 수치다. 내년을 위기에 준(準)하는 해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삼성이 비상경영을 선포한 건 그래서다. 글로벌 경제를 비관적으로 보는 건 삼성뿐만이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내년 세계경제 성장률을 당초 4.5%에서 4.0%로 낮췄다. 세계경제를 떠받치는 세 개의 엔진 중 미국과 유럽 등 두 개가 꺼져가고 있어서다. 그리스는 사실상 국가부도 상태고, 이탈리아·스페인·프랑스 같은 나라도 위태하다. 국가 및 은행 신용등급이 줄줄이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른다. 위세 등등했던 유럽 은행들이 요즘 자기 힘으로 달러 자금을 빌리지 못해 유럽중앙은행이 대신 나설 정도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처량한 건 미국도 마찬가지다. 정부 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늘리기 위해 안간힘이다. 그만큼 소비와 수입이 줄어드는 건 불문가지다. 더 이상 ‘세계의 시장’이 아니라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이게 한두 해로 그칠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위기 극복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세계경제가 저성장 시대에 돌입했다는 의미다.
이게 현실화되면 우리 경제가 큰일이다. 대외 의존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글로벌 경제의 영향을 그대로 받는다. 이미 그 영향을 어느 정도 받고 있다. 두 달 전부터 광공업 생산 활동은 줄고 있고, 기업 재고는 늘고 있다. 대(對)미, 대유럽 수출 증가율도 떨어지고 있다. 그나마 대중국 수출이 괜찮아 아직 크게 체감을 못할 뿐인데, 유럽과 미국이 계속 나쁘다면 이 역시 오래가지 못한다. 외환시장도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정부는 외환보유액이 많아졌고, 단기 외채 비중이 낮아져 2008년의 금융위기 때와는 다르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낙관할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외채 중 절반 정도를 유럽계 은행이 갖고 있고, 증시에 유입된 외국인 투자자금 중 3분의 1이 유럽계 자금이다. 유럽 사정이 악화되면 언제든 빠져나갈 돈이고, 당연히 외환시장은 큰 타격을 받는다. 요즘의 환율 급등이 크게 우려되는 이유다. 가계부채 문제도 언제든 위기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경제는 이처럼 사방이 지뢰밭이고 첩첩산중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여전히 복지 타령이다. 유력한 대선 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와 손학규 대표도 국감에서 복지 얘기만 했고,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정치인들도 대부분 ‘복지 서울’이다. 저성장 시대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할 방안은 무엇인지, 꺼져가는 성장 불씨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아예 뒷전이다. 복지와 분배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다만 그것만 내세우는 것은 위험하다. 다가올 저성장 시대에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것은 소를 어떻게 키우느냐다. 성장이 있어야 복지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