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시장 쇼크는 중요한 사실을 다시금 확인시켜 줬다. 글로벌 경제 위기는 여전히 진행형이며 경제가 정상화되기까지는 앞으로도 상당히 긴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점이다.
같은 위기라고는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와 2010년 이후 유럽 재정위기는 분명 성격이 다르다. 2008년 위기는 가계의 과도한 부동산대출과 금융회사들의 무모한 파생상품 연계 영업에서 초래된 것이었다. 때문에 정부와 시장이 부실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고 수습책을 마련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불확실성의 공포가 강력하게 엄습했던 이유다.
반면 유럽 재정위기는 부실의 규모가 투명하게 드러나 있고, 해결책도 이미 다 나와 있다. 각국의 국가 재정 운용은 의회 승인 사항으로 모든 경제주체에게 공개돼있다. 해결책도 간명하다. 돈을 더 찍어내 국채를 계속 사주든지, 아니면 디폴트를 통해 채권자에게 손실을 떠넘기는 방안이 그것이다.
국가 재정위기는 역사적으로 수없이 반복돼온 현상이다. 그럴 때마다 종국엔 디폴트로 수습됐다. 디폴트에는 두 가지 경로가 있다. 먼저 진짜 부도를 내는 ‘네이키드 디폴트’로 국채를 갖고 있는 투자자가 손실을 떠안아 원금을 날리는 수순이다. 다음으론 실제 부도 처리는 없지만 인플레를 통한 화폐가치 하락으로 사실상 투자 원금이 축나는 ‘스텔스 디폴트’의 수순이다. 부도 처리냐, 인플레냐 그것이 문제인데 지금 채권자들은 두 다 싫다고 완강히 버티고 있는 형국이다. 유럽 각국이 국내 이해관계자들의 반발로 그리스 지원책을 실행하지 못하고, 한 편으로 재정 긴축까지 강요받는 이유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렇게 버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장이 빠른 해결을 강력히 주문하고 있다. 각국의 주가와 환율 등 가격 변수들이 요동 치는게 바로 그것이다. 시장은 이미 그리스의 네이키드 디폴트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그리스 국채의 수익률과 CDS가격은 그리스의 디폴트 가능성을 99%로 인정하고 있다. 시간문제이며 어떤 미련도 가질 게 없다는 판단인 셈이다.
진짜 관심을 둬야할 것은 이탈리아 등 주변 국가로의 전이 여부다. 이탈리아의 국가 채무는 1조 9000억 유로(2900조원)로 세계 3대 채무국이다. 이탈리아 방파제가 무너지면 세계경제에는 2008년 위기에 버금가는 혼란이 야기될 게 뻔하다. 만약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안전장치만 마련된다면 시장은 크게 안도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의 디폴트는 불확실성의 해소로 해석되면서 시장이 상승 반전하는 상징적 변곡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어떤 투자자에게 그리스의 디폴트는 더 이상 견디기 힘든 공포로 다가오겠지만, 다른 투자자에겐 더없이 좋은 출발점으로 활용될 수 있다. 한국이 증시를 떠나는 유럽계 투자자들이 전자이고 한국의 토종 투자자들이 후자가 되길 기대해 본다.
-김광기 중앙일보 선임기자-
KRX 매거진 10월 호에 나온 것이니까 9월에 썼다는 얘기인데, 경제를 보는 통찰력이 대단한 것 같다.
지금은 2008년과는 다르게 불확실성의 위기가 아니라는 부분 읽으면서 공감했다.
해결책은 뻔한데 정치적으로 어려울 뿐이라는 것이 이번 위기에 대한 핵심적인 내용인 것 같다.
신문에서 '헤어컷'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이것은 '디폴트'와 다를 바 없으므로 현재 증시의 랠리도 이해가 간다.
이제 유럽재정위기 이후의 논의를 해야 할텐데
위기 분석과 앞으로의 저성장시대 대비에 대한 좋은 글이 있어서 아래에 추가로 첨부한다.
글로벌 저성장 시대에 대비해야 할 때
:서민경제 각별히 신경써야 하는 이유
주요 선진국들이 수난의 겪으며 세계 경제의 저성장 기조가 두드러지고 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나라 살림 챙기는 것이 시급하다. 특히 가계부채, 물가, 부동산 가격 등 서민경제를 위협하는 문제 해결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시각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국가적 위기는 대부분 경제주체 중 어느 한두 곳의 현금흐름에 문제가 생겼을 때 발생한다.
1997년 말, 우리나라 외환위기는 정부와 금융회사들이 외환관리를 잘못한데다 기업들이 현금관리에 실패하면서 흑자부도 위기에 몰린 경우였다.
2002~2003년의 신용위기는 정부가 소비를 부양하기 위해 은행들의 무분별한 카드 발행 및 대출 남발을 묵인 또는 부추긴 것이 원인을 제공했다. 일단 쓰고 보자고 나서면서 빌린 돈을 제대로 갚지 못하는 개인 신용불량자를 무려 380만 명 이상 양산해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사태 역시 미국 은행과 미국인들이 현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결과였다. 2000년대 들어 대출할 곳을 찾지 못하던 은행들이 신용도가 낮은 개인에게 모기지대출을 해주기 시작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 바람에 부동산 시장에 거품이 발생하면서 너도나도 집을 사고 늘리다 2006년 중반 한순간에 집값이 꺾이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원리금을 제때에 갚지 못하는 연체자 수가 증가하면서 차압된 주택이 시장에 나오고 그에 따라 집값이 더 떨어지는 악순환에 빠지고 만 것이었다.
결국 은행에서 시작된 거품이 부동산 시장과 개인의 거품으로 확산되다가 그 거품이 일시에 꺼지면서 현금관리에 실패한 개인과 은행들이 무너진 것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의 핵심이다.
선진국의 이른바 먹튀현상
최근 글로벌 경제 및 금융시장의 불안요소로 자리잡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재정위기는 정부가 재정관리를 잘못해서 발생한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리거나 세금을 깎아주고 중앙은행은 금리를 공격적으로 낮추는 동시에 돈을 대거 시중에 공급했다.
그런데 예전에는 이쯤하면 경제가 살아나면서 세수가 크게 늘어나 재정적자가 흑자로 돌아서거나 아니면 적어도 줄어들면서 정상을 찾는게 통상적인 수순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어찌된 일인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으로 끝나고 있다. 물 빠진 펌프를 되살리려고 엄청나게 많은 마중물을 부어 넣었지만 물만 삼키고는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정도가 심한 남유럽국가들은 ‘돼지들pigs"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당하고 있다. 사실 돼지는 미국 프로스포츠에서 이른바 ’먹튀‘를 의미하는 말이다. 연봉은 엄청나게 받으면서 성적은 형편없는 선수를 많이 먹고는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돼지에 빗대서 일컫는 말이다.
더 큰 문제는 선진국의 세 축인 미국과 유럽, 일본이 정도만 다를 뿐 한꺼번에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일부에서는 G7또는 G20 등을 통한 국제 공조를 기대하고 있지만 이 또한 2008년과는 달리 뾰족한 수를 내놓기가 쉽지 않다. 선진국의 경우 금리는 제로에 가깝고 이미 돈을 많이 풀었을 뿐아니라 정부부채는 국내총생산 대비 100%수준을 오르내리고 있어서 마땅한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도심에 멧돼지가 나타나서 포수들이 총을 가지고 모였지만 실탄은 없는 경우라 하겠다.
이에 따라 미국과 유럽 등의 성장률 둔화세가 뚜렷해지면서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 등은 올해와 내년의 세계경제 성장률을 당초 4%초중반대에서 4%안팎으로 하향조정해 발표했다. 물론 각국 정부가 마이너스 성장이 이어지는 더블딥으로 가도록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각국이 성장세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노력만 전개함으로써 더블딥은 모면하되 저성장 기조를 벗어나는 데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을 포함한 신흥시장국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을 통해 선진국들의 부진을 일부 상쇄해줄 수는 있겠지만 세계 경제 전체의 저성장을 막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결국 세계경제는 향후 2~3년간 저성장을 벗어나기가 어려울 것으로 봐야 한다.
이 경우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또한 저성장을 피해갈 수는 없다. 우리 경제의 단발엔진 구실을 해온 수출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수출 중 신흥시장국 비중이 70%를 넘고 있기는 해도 어차피 신흥시장국들도 선진국 경제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화살을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선뜻 경기부양에 나선다는 것도 5%를 넘나드는 물가를 보면 가능성이 낮은 옵션이다. 현재로서는 한국은행이 금리를 낮추기도, 돈을 더 풀기도 어려운데다 정부 역시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명한 상태라 재정지출을 크게 늘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경제, 문제는 3가지
그렇다면 우리 경제의 올해와 내년 성장률이 당초 4%중반대에서 4%안팎으로 낮아지고 특히 내년 성장률은 4%를 밑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스탠다드차타드는 최근 한국 경제 보고서를 통해 올해 한국의 GDP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9%에서 3.5%로 내린다고 밝혔다. 우리 경제도 향후 2~3년간 저성장이 이어질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저성장 국면으로 진입하는 시기에 우리가 미리 대비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크게 세 가지, 즉 물가와 가계부채, 주택시장의 연착륙을 꼽을 수 있다.
먼저 물가의 경우 8월에 전년동월대비 5.3%까지 급등했던 소비자 물가 오름세가 9월 이후 둔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모처럼 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는데다 원유 등 국제원자재 가격도 안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 전반에 걸쳐 확산되고 있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차단하기 위해 유류세 등 관세 인하와 환율 하락 용인 등 보다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9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는 우리 경제의 가장 큰 고민이다. 부채부담이 큰 상황에서 저성장 국면으로 진입하게 되면 상환능력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미 가계부채는 가처분소득대비 비중이 150%를 넝어서 자칫 잘못 다룰 경우 2002~2003년의 신용위기보다 더 심각한 가계부문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대출을 억제하기보다는 그간 신용도가 양호했던 고객에 대하여 원금 상환을 일시적으로 연기해 주거나 장기분할상환으로 유도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주택시장 또한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가계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90%안팎으로 미국과 일본보다 2배정도 더 높은 상황이다. 부산과 광주 등 지방 대도시에서는 부동산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지만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지역의 경우 집값이 보합 또는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전세난으로 전셋값이 급등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사람들은 대출이자 부담에 허덕이면서 이른바 하우스푸어로 전락하고 집이 없는 사람들은 전세난민으로 유랑하는 것이 절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경제사학자 찰스 킨들버거가 ‘위기는 끈질기게 피어나는 다년생 꽃’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앞으로 위기는 더 자주, 더 크게 닥쳐올 수 있다.
글로벌 저성장 시대에는 국내 경제도 단도리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정부와 기업, 금융회사는 물론 각 개인도 보다 튼튼한 재무건전성을 유지함으로써 항상 위기에 대처라고 준비해야 할 것이다.
최성환(대한생명 경제연구원 상무, 고려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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